큰 믿음 – 마태복음 15:21-39

오늘 본문을 소개하면서 설교 제목을 큰 믿음이라고 정했습니다. 다같이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큰 믿음. 주님께서 전도하시는 공생애를 시작해 오시는 동안 많은 반대를 격어 오셨으며 자기 가족이나 또 자기의 고향인 나사렛 사람들의 푸대접을 받아 온 것입니다. 또 제자들의 경우는 주님께서 많은 것을 가르치셨고 또 여러 가지의 능력을 행하신 것을 목격했음에도 불구하고 진리에 대해 깨달음이 더딘 것을 보시고 ‘너희도 아직까지 깨달음이 없느냐?’라고 책망하셨으며 물위를 걷다가 무서워하는 베드로에게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고 책망을 하셨음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사역하시는 동안 실망하실 일만 당하신 것은 아니고 좋은 믿음을 가진 자들을 만나시고 그들을 통해 영광도 받으시는 것을 보게 됩니다.

오늘 주시는 본문 말씀은 좋은 믿음을 가진 사람들의 모습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는 그들의 신앙을 본 받아서 모두 큰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말씀을 3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이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칭찬 받는 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21-28)

[2]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29-31)

[3]사천 명을 먹이신 이적(32-39) 입니다.

 

[1]먼저 칭찬 받는 한 가나안 여인의 믿음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본문 21절에 보니 ‘예수께서 두로와 시돈 지방으로 들어가시니’라 되어 있음을 보게 되며 막 7:31에 보면 보다 더 자세하게 ‘두로 지경에서 나와 시돈을 지나고 데가볼리 지경을 통과하여 갈릴리 호수에 이르니’라고 기록해 주심으로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는 모든 사건은 유대 땅이 아닌 이방 땅에서 일어난 것임을 분명하게 말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 동안 유대인들을 중심한 전도 활동을 펴시다가 이제는 그가 십자가를 지셔야 할 시기가 가까워 옴을 의식하시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가 유대인에게만 제한된 것이 아니라 유대인은 우선 순위일 뿐이요 이방인에게도 하나님의 은혜가 비춰져야 함을 제자들에게 실증해 줘야 함이 필요하셨는지 유대 땅을 벗어나 멀리 이방인 도시 두로와 시돈, 또 데가볼리등을 통과하시며 하늘나라 메시지를 전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주님께서 버림받은 자들에게 찾아가신 것에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난한 자와 병든 자와 억눌린 자에게 찾아가신 스승을 본받아 주님을 따르는 모든 제자들도 그런 자들을 돌아보라는 암시인 것으로 이해해야 할 줄 압니다.

이방 땅에 들어섰는데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께 달려와 소리지르기를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히 귀신들렸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주님께서 우물가의 여인에게 찾아가시어 물을 달라고 하신 요한 복음 4장의 장면과 대조를 이루는 장면입니다. 그때는 주님께서 전도하시기 위해 친히 찾아가셨으며, 우물가의 그 여인은 주님께 ‘당신은 유대인으로서 어찌하여 사마리아 여자 나에게 물을 달라 하시나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가나안 여인과 같은 이방 사람은 유대인에게 감히 찾아와 말을 걸 입장이 아니었음에도 주님께 찾아와서 자기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기 딸의 병을 고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이 가나안 여인은 처음부터 자기의 입장을 잘 아는 지라 부탁한 자체가 무리인 줄을 잘 알면서도 도움을 받지 않으면 안되기에 부탁하는 자의 겸손하고 절박한 마음의 자세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이런 딱한 청을 받은 주님께서 아무런 대답을 하시지 않고 침묵을 지키신 것입니다. 이방 땅에 가신 목적이 전도를 위해 가셨고 도움이 필요한 자에게 도움을 주시려 가신 주님께서 도움을 요청한 자에게 침묵이라니 좀 이상하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여러분이 누구에게 어려운 부탁을 했는데 부탁 받은 사람이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 다면 어떻게 하셨겠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부탁한 자체가 내 잘못이었다고 하고는 이젠 다시는 부탁하지 않겠다고 퍽 언짢아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그 여자는 주님의 침묵에 무안해 하거나 낙담하여 그녀의 요청을 포기해 버리지 않고 계속 소리를 질렀나 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말씀드리기를 ‘그 여자가 우리 뒤에서 소리를 지르오니 보내소서’라 하였던 것입니다. 이 말은 저렇게 시끄럽게 하니 해결해 주고 보냈으면 좋겠다는 요청이었을 줄 압니다. 제자들의 이런 제안을 받으시고 주님께서 대답하시기를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고 대답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라면 도와줄 수 없다고 거절하는 말인 것입니다. 그때 가나안 여자는 예수님께 절하며 ‘주여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애원을 하게 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 또 거절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무슨 말입니까? 아브라함의 자손, 즉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야 할 도움의 몫을 개 취급을 받는 이방인들에게 줌이 옳지 않기 때문에 도와 줄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한 것입니다. 세 번째의 거절을 당하고도 가나안 여인은 또 사정을 하기를 ‘이스라엘 백성들의 집에서 기르는 개들도 주인의 상에서 떨어진 부스러기를 얻어먹지 않습니까?’ 라고 답변한 것입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움 받아야 할 몫을 도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돕고 남은 것만이라도 도와 달라는 말인 것입니다. 개 취급을 해 주셨으니 개들이 받는 대우만이라도 받게 해 달라는 애절한 부탁을 드린 것입니다. 그 여인의 말을 들으시고 주님께서는 그 여인에게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신 것입니다. 소원이 무엇이었던 가요? 딸이 귀신들인 것이었지요? 이 여인은 잠시 동안의 무안과 자존심 상함을 잘 극복한 결과로 소원도 풀고 주님으로부터 믿음이 크다는 칭찬까지 받게 된 것입니다. 이 가나안 여인의 믿음이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이었다고 믿으십니까?

주님께서는 결과적으로 그 여인의 소원을 들어주시게 되는데 왜 처음부터 고쳐 주시지 않고 여러 번 거절하시다 고쳐 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주님께서는 이 여인의 믿음을 아시고 그가 가진 겸손과 인내와 주님을 철저히 필요로 하고 또 신뢰하는 그의 믿음을 주변 제자들에게 나타내 보이시어 믿음의 덕을 끼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함이었으리라고 믿습니다.

 

[2]두 번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일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산에 올라가 거기 앉으셨다고 29절에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을 필요로 하는 자들에게 도움을 주시기 위해 도울 수 있는 자세를 취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에게 언제나 남을 도울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시범을 보이시고 또 몸소 도와주시는 장면을 보여 주시면서 산 교육을 실시하고 계신 것입니다. 무리들이 몰려왔고 또 그들이 절뚝발이와 불구자와 소경과 벙어리와 기타 여러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의 발 앞에 두니 주님께서 다 고쳐 주시어 벙어리가 말하고 불구자가 건전하고 절뚝발이가 걸으며 소경이 보는 것을 무리들이 보고 기이하게 여겨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기록입니다.

여기서도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기록’을 통해 여기에 모인 무리들은 주로 이방인들인데 그들이 예수님의 이적을 직접 눈으로 보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 중에는 예수님의 이적을 체험하고는 그 능력을 ‘바알세불’에게 돌렸는데 이방인들은 예수님의 능력이 자기들 이방이 믿는 신이 아닌 이스라엘이 믿는 ‘하나님’ 에게서 온 것을 바로 알고 이스라엘의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사실입니다.

이 이방 무리들은 이런 큰 도움이 어디서부터 온 것인지 축복의 근원을 알고 복을 내려 주신 자가 받아 마땅한 영광을 바로 그분께 돌리는 모습은 정말 우리에게 감동을 주고 있습니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된다’는 주님의 말씀 같이 믿음 생활에 전연 경험이 없는 이들인데도 똑바로 자신을 알고 하나님을 아는 것을 보면서 믿음의 긴 역사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확신과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를 바로 알고 범사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 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는 하루 생활을 통해서도 시시 각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입는 은혜가 너무 많은데도 감사를 잊고 당연한 것으로 받는 우리들인데 우리들더러 범사에 감사의 생활을 하도록 깨우쳐 주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3]세 번째로 사천 명을 먹이신 이적입니다.

우리는 이미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소개받은 바 있습니다. 오늘은 떡 7개와 물고기 두어 마리로 4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소개받게 됩니다. 4천명을 먹이신 본문 내용과 5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비교하면서 본문을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우선 이적을 행한 장소입니다. 4천명을 먹이신 이 지역은 이미 언급한 대로 이방 지역이므로 모인 무리들이 주로 이방인들이었으며 5천명은 이스라엘 사람들이었습니다. 또 계절적으로도 5천명을 먹이신 때는 푸른 풀밭이었는데 그곳으로부터 두로와 시돈을 거쳐 데가볼리로 전도하고 돌아오려면 거리가 멀어 수개월이 걸리게 되므로 계절적으로 푸른 풀이 없는 계절이었는지 막 8장 6절에 보면 ‘땅’에 앉게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5천명을 먹이실 때는 제자들이 먹을 것에 대해 제안을 하였고 여기서는 예수님께서 ‘내가 무리를 불쌍히 여기노라’고 제안을 하신 것입니다. 5천명을 먹이실 때는 1일 집회인 것으로 보나 4천명을 먹이신 무리들과는 ‘저희가 나와 함께 있은지 이미 사흘이매’라고 한 것을 보아 이미 3일 동안의 연속 집회이었음을 보게 됩니다. 5천명은 떡 5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먹이셨으며 12광주리가 남았고 4천명은 떡 7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로 먹이셨고 7광주리가 남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같은 광주리이나 원어에서는 다른 단어가 사용되어 있는데 12광주리는 휴대용 작은 광주리이나 7광주리는 사울을 성에서 달아 내린 사람이 들어 갈 수 있는 큰 광주리라고 합니다. 마 16:9,10에서는 바구니와 광주리로 구분되어 있음을 보게 됩니다.

4천명을 먹이신 이적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배우게 됩니까? 아니 이 3일 짜리 신자들에게서 무엇을 배울 수 있겠습니까? 이들은 영적인 일을 세상 적인 일보다도 더 우선 순위에 두었다는 것입니다. 말씀 듣는 것을 위해 3일간이나 자기들의 직업을 뒤로하고 먹는 것까지 잊고 있었던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우선 순위를 아는 자들이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밤낮 3일 집회를 한다고 한다면 직장과 사업 때문에 불참하게 될 분들이 많으시겠지요? 아니 오늘 설교를 1시간 동안이나 길게 한다면 집중력을 잃고 계속 시계만 쳐다보게 되지 않을 까요? 이것이 믿음을 철저히 갖기 어려운 우리들의 현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먹을 것에 대해 그들이 준비하지 않고 무관심하니 주님께서 신경써주시고 해결해 주셨던 진리를 늘 마음에 두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우리가 받는 교훈은 무엇이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첫째, 가나안 여인과 같은 큰 믿음을 꼭 본 받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주님으로부터 ‘네 믿음이 크도다’라는 칭찬을 받은 본질을 닮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본질이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분을 바로 찾았고 자기의 요구를 분명히 전달했고 자기의 요구가 실현되기까지 어떤 수치도 고난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로지 자기의 소망에만 초점을 맞추었다는 점입니다. 결과적으로 이 가나안 여인은 받을 자격도 없는 자임에도 자비를 바라는 그 여인에게 주님께서 자비의 시선을 주시고 소원을 이루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문제를 풀어 주실 분을 바로 찾아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모든 소원을 풀어 주실 분은 오직 주 예수 한 분이신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세상에는 도와준다고 하면서 말로만 또는 추상적으로만 돕는 자들이 있는데 우리 주님은 우리의 영과 육의 모든 문제를 실제적으로 실감나게 풀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모든 문제를 놓고 부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분은 우리가 모든 문제를 자기와 상의하시기를 바라시는 분이십니다. 눈물을 가지고 오셔도 좋고 근심을 가지고 오셔도 환영하시는 분이십니다. 남이 모른 비밀 상담도 환영하시며 고통을 주는 질병 문제도 다 좋습니다. 그분은 우리 모두가 꼭 만나야 할 분이시고 모든 문제를 상의해야 할 분이시며 철저히 그분의 자비를 받고 살아야 할 우리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를 너무나도 사랑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사랑을 확증하기 위해서 십자가를 통해 죽기까지 하신 분이십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을 다해서 우리도 그를 사랑할 가치가 있는 분이심에 틀림없습니다. 우리의 뜨거운 사랑은 그분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 것입니다. 무엇이든 부탁하시고 혹시 그분이 침묵하시더라도 그 침묵은 나를 위한 것으로 믿고 혹시 그분이 안된다고 거절하시드래도 나를 위해 거절하시는 것으로 꼭 믿으시기 바랍니다. 침묵을 지키셨던 그분이, 안된다고 거절하셨던 그분이 우리에게 넘치게 주시며 또한 ‘네 믿음이 크도다’라 칭찬하실 것입니다.

 

둘째로,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평범한 생활 속에서 하나님이 역사 하신 이적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하겠고 또 이 이적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하겠습니다. 우리가 죽었다 살아난 것을 이적으로 받을 수 있다면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자체는 어쩌면 더 큰 기적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할 줄 압니다. 크게 교통사고가 났으나 크게 다치지 않은 것을 기적으로 받는다면 전연 교통사고를 당하지 않은 오늘을 더 큰 기적으로 받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어제와 전연 다름없이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게 한 것인데도 잠들었다가 눈을 뜨게 하신 은혜를 감동으로 받고 감사를 드리며 날마다 다니는 직장에 오늘도 출근하는 자체를 이적같이 받는 감사가 우리 마음속에 있어서 하루면 몇 번이라도 이적을 체험하는 것 같은 감동 속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하겠다는 말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릴 수 있는 이 자체가 엄청난 축복이요 이적인 것을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이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이 자리에 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새차이던 헌차이던 지금 달리고 있는 차를 보고 신통하게 잘 달리고 있다고 감탄하는 바보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돈을 주면 무엇이든 우리가 필요한 것을 척척 내주는 이적을 보고 하나님의 예비하심에 대한 깊은 감동과 체험을 하는 바보들이 다 되시라는 것입니다. 똑 같은 생활의 연속이라고 생활을 지루해 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해도 하루에 수백 수천 개의 지진이 일고 있으며 우리는 느끼지 못하지만 빙빙 돌고 있는 지구 위에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큰 변화를 바라시면 주님께서 느끼지 못한 지진 말고 집이 무너지는 지진을 보내 주실 것이고 지금 돌고 있으나 안전하게 돌던 지구가 크게 흔들려 걷거나 차 타고 가기에 아주 불편한 흔들거리는 지구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평범하고 똑 같은 반복된 생활 속에서도 실지로 가능한 엄청난 변화를 느끼고 이적을 체험하며 돌보시는 하나님께 너무 감사하여 입에서 감사와 찬양의 소리가 연발되어지기를 기원합니다.

 

셋째로, 3일간의 연속 집회에 참석한 이방인들은 주님이 베푸시는 것들을 받느라 자기가 하는 일과 먹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안했던 모범대로 육의 일보다는 영의 일에 보다 더 큰 비중을 둘 수 있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Business 도 중요하고 직장도 중요하고 우리 가정의 모든 문제가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큰 무리들이 먹을 것을 준비하지 않고 먹을 것에 신경을 쓰지 않으므로 주님께서 이를 준비하신 진리를 일생 살면서 기억하실 수 있으시기 바랍니다. 내 힘으로 내 먹을 것, 내 입을 것, 내 사업체, 기타 모든 것을 다하느라 너무 수고하시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관심은 우리가 보다 더 영적인 것에 우리의 시간과 정력을 쏟기를 바라신 것입니다. 물론 우리 생각에는 내가 내 일을 위해 내가 스스로 철저히 해내 놓지 않으면 누구 하나 도와줄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생각되겠지만, 지나치게 그렇게만 생각하며 사는 인생은 피곤하게 혼자 사는 인생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큰 도움을 주실 주님을 도울 수 있는 주님으로 믿고 살지 못하는 증거인 것입니다. 큰 무리들이 모두 도시락을 준비하고 주님 앞에 앉아 있었다면 성경에 5병 2어의 기적이나 7병 2어의 기적은 기록되어져 있지 않을 것입니다. 아니 그런 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을 막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평범한 생활에서도 나를 통해 5병 2어의 기적이 일어나도록, 아니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시어 그를 통해 내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것을 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주님이 일하실 여백을 남겨 두셔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에는, 내 경험으로는 불가능한데도 믿기 어려운 이적을 체험하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적을 행하실 여백을 만들어 두시지 않는다면 일평생 그런 체험을 못하고 내 힘으로만 이 세상을 사는 각박한 삶을 살고 말 것입니다. 주일에 직장에 나오지 않으면 해고할 것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실천하기를 바라는 그에게 이적을 체험시켜 주실 것입니다. 영적인 일을 위해 육적인 것을 뒤로하는 자들에게 정말 가치 있는 신앙의 체험을 가져다주시는 주님이심을 저는 믿습니다. 우리 성도들이 영적인 문제를 위해 육적인 것들을 뒤로하는 문제로 경제적으로나 다른 피해를 일시적으로 당하는 것 같았으나 주님께서 신기하게 그 일에 관여하시어 이적을 체험하시는 성도님들의 간증이 많아지기를 원합니다.

 

주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가나안 여인의 믿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 큰 무리 이방인들의 믿음, 주님 곁에 있기 위해 3일 동안이나 자기 생업을 뒤로하고 심지어 먹는 일까지 잊고 주님께만 초점을 맞추었던 이들의 믿음이 과연 칭찬을 받을 만한 믿음이라고 믿으십니까? 이런 큰 믿음을 가지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