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과 악한 농부의 비유 – 마태복음 21:33-46

지난 주에는 두 아들의 비유를 통해 하나님의 뜻에 거역하는 삶과 순종하는 삶에 대한 교훈을 받았는데 오늘은 포도원 농장 주인과 그 농장을 세를 내고 운영하는 농부들에 대한 비유를 통해 하나님을 거역하는 인생들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를 경고해 주시면서 모든 인생들은 마땅히 하나님을 경외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영접하도록 교훈 해주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이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하나님께서 보시는 관점에서 보여주신 것으로 앞으로 이스라엘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예언하신 것입니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의 아들을 거부할 것이며 그들의 거부와 그 잔인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이스라엘을 거부하시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스라엘로부터 다른 민족에게 넘겨주시게 될 것을 예언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이 되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하나님의 나라와 또 다른 많은 복이 사람들의 외모나 혈통을 따라 주시는 것이 아니라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합당한 열매를 맺는 자들에게 주어질 것을 가르쳐 주시는 교훈입니다.

오늘 이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하나님께서 기대하신 열매를 맺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시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많은 복을 다 누리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3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그 교훈을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비유(33-41)

[2]예수님의 경고(42-44)

[3]비유의 결과(45-46) 입니다.

 

[1]먼저 비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비유의 내용은 한 집주인이 포도원을 만들고 산 울로 두르고 즙 짜는 구유를 파고 망대를 짓고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갔다가 실과 때가 가까우매 실과를 받으려고 자기 종들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들을 잡아 때리고, 죽이고, 돌로 쳤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인은 인내심을 가지고 또 다른 종들을 처음보다 더 많이 보냈는데 이들에게도 똑같이 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생각하기를 내가 내 아들을 보내면 농부들이 내 아들은 공경하겠지 하고 아들을 보냈더니 농부들이 주인의 아들을 보고 말하기를 이는 주인의 상속자니 자 죽이고 그가 받을 상속을 차지하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어쫓아 죽였다는 것입니다. 이럴 경우에 포도원 주인이 이 농부들을 어떻게 하겠느냐는 것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와서 마땅히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은 제때에 실과를 바칠만한 다른 농부들에게 넘겨줄 것이라는 비유입니다.

집주인은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그의 아들은 메시아 되신 예수님이시요, 종들은 선지자들이며, 악한 농부들은 유대 종교 지도자들을 비유하신 것입니다. 이 비유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삼으시고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택한 백성들의 복지를 위해 희생하고 최선을 다하기를 기대하시고 또한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이 만방에 여호와 하나님을 증거 하시기를 바라시고 애굽에서 인도해 내셨으며, 젖과 꿀이 흐르는 기름진 좋은 땅을 주셨고 훌륭한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보내시며 그들이 하나님께서 맡기신 모든 과업을 충분히 해 낼 수 있도록 모든 환경을 조성해 주었으나 하나님이 맡기신 임무를 일꾼의 위치에서 잘 해내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배반하여 하나님의 지배받기를 거절하고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고, 핍박했으며 심지어 아들 되신 예수님까지 십자가에 못박게 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심판 날에 하나님을 배반한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을 멸하고 오히려 순종심이 있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하리라는 예언적 비유인 것입니다.

주인이 “포도원을 만들었다”는 것은 할 일을 주셨다는 뜻이며, “산 울로 둘렀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일군들을 보호하기 위해 보호 울타리를 만들어 주었다는 뜻이며 ‘즙 짜는 구유를 팠다’는 말은 일할 여건을 만들어 주시고 일할 능력이 되는 탈란트를 주셨다는 뜻이며 ‘망대를 지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철저히 감찰하시어 어떤 원수도 접근하지 못하도록 지켜 주셨다는 의미이며 ‘세로 주었다’는 말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은 하나님이시요 우리는 청지기의 삶을 산다는 의미이며, ‘실과를 받는다’는 말은 우리의 맡은 바의 책임과 사명을 하나님께서 계산하시고 확인하신다는 뜻이며, ‘주인이 올 때’란 심판 때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본문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렇게까지 배려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배반하고 포도원을 통째로 차지하고 세도 내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관리하고자 했다는 말인 것입니다. 농부들에게 맡기시고 타국에 갔다는 말은 철저히 신임했음을 말해 주는 것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들을 신임했으나 그들은 자기들의 사리 사욕에 눈이 어두워서 선지자들도, 또 예수님도 거절해 버린 비극을 나타내 보여주시는 비유인 것입니다.

본문이 주고자 하는 의미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달려 죽게 하므로 하나님을 완전히 배반했으며, 하나님께서 그들을 통해 이룩하고자 하는 큰 기대를 저버린 민족임을 말해 주는 것으로 그런 이유로 하나님께서는 이방인들을 통해 열매를 거두시기를 기대하신다는 것입니다. 호세아의 글에 ‘내가 내 백성 아닌 자를 내 백성이라 하고 사랑치 아니한 자를 사랑한 자라 부르리라’한 것이 바로 이스라엘의 거절로 인해 이방인에게 구원이 넘어가게 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물론 이 비유가 이스라엘 모두가 구원을 못 받고 이방인 전부가 구원된다는 의미는 전연 아니고 롬 9:27 에 이스라엘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 지라도 남은 자가 구원을 얻으리라 했는데 이스라엘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열매맺는 자 즉 영적으로 살아남은 자만 구원을 얻게 되리란 교훈인 것입니다. 반면에 악한 농부와 같이 하나님을 거역하고 불순종한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필연적임을 교훈 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예수님의 경고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주님께서는 비유를 들려주시고 3가지의 경고를 주시게 됩니다. 첫째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는 경고였습니다. 이 경고의 배경은 시편 118편으로 시편 118편은 사울왕과 사울왕을 추종하는 자들이 다윗을 버리고 죽이려 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기름을 부으시고 왕으로 삼으신 것을 배경으로 된 것으로 예수님 경우에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건축자의 위치에서 예수님 돌은 쓸모 없다고 버렸지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돌을 택하시어 교회, 즉 천국의 머릿 돌이 되게 하시고 그 돌 위에 모든 성도들이 세워지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의 형들에 의해 버림을 받은 돌이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머릿돌로 삼으시어 애굽의 총리 대신이 되게 하시고 요셉의 가족들을 구원시키는 좋은 돌이 되게 하신 거와 같은 것입니다. 무릇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했는데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자는 사람들에 의해 버린 돌이 될 수 있으나 하나님께서는 그를 머릿돌로 삼으신다는 진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비록 인간으로부터는 인기가 없고 버림을 받는다 해도 하나님으로부터 인정받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의 경고는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누구입니까?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입니다.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이란 어떤 자들입니까? 성경을 알고 남을 가르치면서 자기들은 실천하지 않는 위선자들로서 세례 요한을 하나님이 보내신 선지자인 줄을 알고 예수님도 하나님의 보내신 메시아임을 많은 증거를 통해 충분히 알면서도 자기들의 명예와 이익을 위해 모른다고 거짓말을 하고 오히려 책을 잡아 예수를 잡아죽인 살인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복음에 대한 증인의 삶을 살고, 희생과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할 자들이 자기들의 본연의 자세를 버리고 오히려 거짓 증거자가 되며 사리 사욕에 눈이 어두운 삶을 살았던 자들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거절하고 세상의 영광을 택했던 자들입니다. 그런 자들인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고 그 나라의 열매 맺는 자들이 받으리라는 것입니다. 그 나라의 열매 맺는 자가 누구일까요?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께 영광과 찬송을 돌리는 자라 하겠습니다. 즉 육적 이스라엘 백성이 아니라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말하는 것으로 혈통의 이스라엘이 아니라 믿음으로 하나님의 아들 딸 된 양자 양녀를 말하는 것입니다. 신약 성경에서는 이들을 거룩한 성전,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또는 성도나 그리스도인이라 칭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 번째 경고는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저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돌로 표현되어지고 있는데 이미 앞에서 언급했던 건축자들의 버린 돌, 모퉁이의 머릿돌, 산돌, 부딪히는 돌, 또는 거치는 반석으로 표현되어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수를 믿고 순종한 자에게는 주님이 살려주시는 산 돌이 되시고 그들에게 튼튼한 반석이 되어 주시지만 믿지 아니하고 반항하는 자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걸려 넘어지게 하시는 부딪히는 돌이요 거치는 반석이 될 뿐 아니라 심판 날에는 그 돌이 불신자들에게 떨어져 그들을 가루로 만들어 버린다는 심판의 경고인 것입니다.

 

이 세 가지의 경고를 통해 듣는 자들에게 선택을 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주님을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주님께서 내게 삶을 가져다주는 산 돌로 영접을 하고 또 내 삶의 기초가 튼튼해지도록 해 주는 머릿돌이 되시게 영접을 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을 거역하고 주님을 불신하므로 오히려 나를 걸려 넘어지게 하는 거치는 돌로 삼던지 하라는 것입니다. 다른 말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던지 아니면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던지 하라는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 교회 성도들에게 주님을 머릿돌로, 산 돌로 영접하므로 하나님의 나라를 차지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라시면서 이런 선택의 경고를 주시는 것입니다.

 

[3]세 번째로 비유의 결과입니다.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비유와 경고를 듣고 이 비유와 경고가 자기들을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알고 예수님을 잡고자 하나 무리들이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기 때문에 무리들을 무서워하여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비유로 농부들이 종들과 주인의 아들까지 때리고 죽였다고 했는데 바로 악한 농부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인 대제사장과 바리새인을 가리킨 것이요, 또 그들의 불신과 불순종으로 인해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기게 될 것이며, 거치는 반석이시요, 부딪히는 돌 되시는 예수님 때문에 그들은 넘어지고 깨어질 것이며 더욱 심판 때에는 돌 되시는 예수님께서 그들을 가루로 만들어 흩으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을 알아차리고 화가 나서 예수님을 잡고자 했으나 예수님을 선지자로 알고 있는 백성들이 무서워서 예수님을 잡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할 그들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사람들을 두려워한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바리새인들은 비유를 통해 자기들이 저지른 죄를 지적 받고 또 심판에 대해 경고를 받았으니 마땅히 자신들의 죄악과 불의를 회개했어야 마땅 한대도 회개하지 아니하고 예수님을 잡고자 한 그들의 죄는 더 큰 심판을 자초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돌에 의해 가루가 될 수밖에 없는 길만 걷고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지적해 주고 회개하기를 촉구했던 세례 요한을 목벤 헤롯이나 헤로디아와 같은 죄를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그 교훈을 우리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깨닫고 하나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기대하시는 삶을 살아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도 아닌 무할례당인 이방인을 하나님의 아들과 딸로 양자 양녀 삼아 주신 은혜입니다. 원래는 돌 감람나무였는데 참 감람나무에 젖 붙여 주신 은혜를 입은 자들입니다. 또 육으로 살다가 육이 끝날 때 우리의 인생은 다 끝나게 되어 있었는데 우리들에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원히 복락을 누리며 살도록 해주신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고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겠으며 추악한 우리 안에 하나님이 거하시어 우리 몸이 성령의 전이되며,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어떻게 왕같은 제사장이나 거룩한 나라가 될 수 있겠습니까? 이 세상의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이 우리를 양자나 양녀를 삼고 싶다는 말을 했다면 가슴이 뭉클해지지 않겠습니까?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양자 양녀 삼아 주신 그 은혜를 날마다 감격하며 살아야 합니다. 아니 그 기쁨과 그 영광을 남에게 진심으로 자랑하는 증거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생각하면 끝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셔서 우리는 가난한 자 같으나 부요한 자요, 마치 죽은 자 같으나 산 자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들은 낮고 천하고 못나서 우리의 처지를 부끄러워하는데도 하나님께서는 낮은 우리를 들어 높은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겠다고 하시니 비록 낮은 자리에 있어도 조금도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히려 떳떳하고 자부심을 갖고 살도록 하셨습니다. 늘 실망하고 낙담할 수 있는 우리 약자들에게 큰 소망을 주셨으며, 크고 작은 근심거리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우리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며 항상 너희와 함께 하시겠다고 보장을 하시니 그 보살피시는 은혜를 무엇으로 감사 드릴 수 있겠습니까? 이런 은혜를 통해 우리의 마음에 지극한 감사와 평안을 주셨으니 하나님이 아니시면 그 누가 이런 감사와 평안을 주실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하나하나 생각하며 진심으로 그 은혜를 감사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감사하고 행동으로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두가 보다 더 겸손하여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자들이 다 되기를 기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되기를 기대하실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도록 성령을 통해 우리들 각자에게 탈란트도 주시고 철저히 보호하시며 또한 능력을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혈통을 받은 자들임을 새삼스럽게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왕 중의 왕이시므로 우리가 왕족의 혈통을 받은 자들입니다. 하나님이 거룩한 분이시므로 우리가 거룩한 자들이며 하나님이 영원한 분이시므로 우리도 영원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인해 그 같이 존귀한 자들이 다 되었으므로 우리를 존귀한 자로 만들어 주신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과 찬양을 돌려 드려야 합니다. 그리고 아버지께서 우리들이 어떻게 살기를 바라고 계시는지 아버지의 마음이 성경에 잘 기록되어 있으므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대로 살아서 아버지께서 바라시는 열매들을 맺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이 믿음을 저버리고 악한 길에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버리셨는데 행여 라도 늦게 양자 된 우리들이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지 못할 때에는 우리도 역시 버리실 것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롬 11:20,21 에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희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하였습니다. 원가지가 무엇입니까? 택한 백성인 이스라엘도 버리셨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택한 백성도 버리셨는데 하물며 양자 된 우리들이 교만하고 순종치 않으면 말할 필요 없이 버림을 받을 것이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산다면 그리스도의 돌에 의해 가루가 되는 엄한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신뢰하시고 우리에게 우리가 할 일을 다 맡기셨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삶을 살 수 있도록 망대도 세워 주시고 즙 짜는 구유도 파주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포도원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하며 그에게 바쳐야 할 마땅한 세를 바칠 마음만 있다면 포도원 농사는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다 책임을 져 주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눈 앞에 보이는 욕심 때문에 포도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해서는 아니될 것입니다. 포도원에 세든 우리 신분을 망각하고 포도원 주인의 지배를 벗어나겠다는 빗나감이 있어서도 아니 되겠습니다. 포도원 주인 되시는 하나님의 간섭을 받아 내가 내 마음대로 살지 않는 것이 가장 복된 삶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부모의 간섭이 싫다고 집을 나간 자는 그가 탕자이며 그가 결코 복된 삶을 누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새롭게 마음으로 깨닫고 그 은혜를 지극히 감사하는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 은혜를 감사하고 보답하는 길은 그가 바라시는 삶을 사는 것인데 그가 바라시는 삶이란 그의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길임을 깨닫고 끝까지 순종하는 삶을 살아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