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최근 몇 주 동안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그 부름에 합당하게 생활하라는 교훈을 받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 성도들이 예수를 영접하기 전에는 우상을 섬기고 세상 모든 욕심에 따라 온갖 더러운 생활을 했었으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하늘 나라의 상속자가 되었으므로 하나님의 자녀답게, 하늘 나라의 상속자답게 모든 더러운 생활로부터 온전히 벗어나 새로운 온전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같은 맥락의 교훈을 주고 있는데 빛의 생활과 어두움의 생활을 대조하며 어두움의 생활을 벗고 빛의 생활을 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어두움의 생활이란 사단이 좋아하는 삶을 말하는 것이며 빛의 생활이란 하나님이 좋아하는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어두움의 옷을 다 벗고 온전히 빛의 옷으로 갈아입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10) [2]어두움에 빛을 비추라(11-14)입니다.
[1]먼저 8절부터 10절까지의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인들이 예수를 알지 못할 때에는 ‘어두움’이었지만 이제는 ‘주안에서 빛’이 되었으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어두움이란 예수를 알지 못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예수를 믿기 전의 그들을 어두움이라 표현한 것은 첫째, 하나님의 나라에 대해 전연 알지 못하는 캄캄한 자들이요 소망이 없어 답답하고 꽉 막힌 자들이라는 의미가 되며 둘째로는 세상의 온갖 더러운 욕심에 끌려 더러운 마음과 더러운 행동과 더러운 말로 온통 더럽혀진 죄인들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또 ‘빛의 자녀’라는 말은 첫째 참 빛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자들로서 죄를 용서받고 하나님의 나라에 대한 소망이 있는 자들이며 둘째 그 소망 가운데 선하고 의롭고 정결한 삶을 살아가는 자들이라는 뜻이 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이 이제는 어두움의 자녀가 아니요 빛의 자녀들이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의 빛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권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갈라디아서를 통해 모든 성도들이 맺어야할 성령의 열매를 소개받은 바 있습니다. 성령의 열매가 어떤 것들이었던가요? 사랑과 기쁨과 평화와 인내와 친절과 신실과 온유와 절제였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빛의 열매로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착함이란 글자그대로 도덕적으로 정직하고 성실하며 또 선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악하지 않고 온유하며 성실한 행동입니다. 우리들이 보통 말하기를 그 사람은 참 착하다고 말하는 그런 착함을 말합니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착해야 합니다. 믿는다고 하면서도 순진하고 착한 맛이 없는 것은 빛의 자녀답지 못한 것이 되겠습니다.
또 의로움이란 믿음이 있고 또 행함이 있는 것을 말합니다. 믿음이 없으면서 행위만 갖는 자는 자기의 선한 행위로 구원될 줄 믿는 자가 되어 의로운 자라 할 수 없으며 또 어떤 자는 믿음에 대한 확신은 있으나 행함이 없는 자이므로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므로 역시 의로운 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의로운 자란 첫째 진리를 통해 바른 믿음을 갖는 것이고 두 번째는 그 믿음의 기초 위에 행함이 있는 생활을 하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또 진실함이란 글자 그대로 진리에 기초를 둔 참된 믿음이요, 위선과 거짓이 없는 참된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적인 바른 신앙을 갖지 못하고 인본주의 적 신앙을 갖는 자도 진실하다 할 수 없으며 변덕스럽고 겉과 속이 다르게 행동하는 자도 진실한 자라 할 수 없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진실한 사람, 치우치지 아니하고 정의로운 사람, 믿을 만한 사람이라는 평을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진실한 사람을 아끼고 사랑하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소개하고 있는 빛의 열매인 착함, 의로움, 진실함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데 시편 15편이 도움이 될 줄 압니다. 이 시편 15편은 주의 성산에 오를 자 즉 천국에 들어가 살 수 있는 자가 어떤 자들인가를 노래한 것입니다. “주님, 누가 주님 계신 곳에서 살 수 있는 사람입니까? 주의 거룩한 산에 머무를 사람은 누굽니까? 깨끗한 삶을 사는 사람, 정의를 실천하는 사람, 마음으로 진실을 말하는 사람, 혀를 놀려 남의 허물을 들추지 않는 사람, 이웃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 친구를 모욕하지 않는 사람, 하나님께로부터 버림을 받는 자를 경멸하고 주를 두려워하는 사람은 존경하는 사람, 자기가 맹세한 것은 자기에게 해가 되더라도 변함없이 지키는 사람, 이자를 받으려고 돈을 꾸어주지 않는 사람, 죄 없는 사람을 해치려고 뇌물을 받는 사람이 아닌 자, 이러한 사람은 영원히 흔들리지 않을 것입니다.” 라 했습니다. 바로 이런 자들이 착하고 의로우며 진실된 빛의 자녀들이라 할 것입니다.
10절에 보면 빛의 자녀들에게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보라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살아야 우리를 낳아주신 우리 부모님이 기뻐하실 지를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도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주께서 기뻐하실지를 알고 있습니다. 어두움의 생활을 청산하고 빛의 생활인 착하며, 의로우며, 진실한 삶인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은 주님께서 기뻐하실 일을 매일 매일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2]두 번째로 11절부터 14절까지의 어두움에 빛을 비추라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빛의 자녀들은 그 이상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어두움에 있는 자들을 책망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또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는 것마다 빛이니라 고 했습니다. 옛날 노름하던 친구들을 만나 다시 노름을 하지 말고 이젠 그들을 책망하라는 것입니다. 옛날 술친구들을 만나 함께 또 술을 마시지 말고 그 옛 친구에게 이젠 새 생활을 하도록 책망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책망하라는 말을 다른 방법으로 말을 한다면 예수 믿고 새 사람이 된 변화된 자기의 모습을 옛 친구들에게 행동으로 보여 주어 옛 친구들이 자신들의 변화 없는 모습을 돌아보고 부끄러움을 느끼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믿는 자들을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참 빛 되신 그리스도로부터 빛을 전달받은 작은 빛들입니다. 이 작은 빛을 어두운 세상을 향해 비추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모든 작은 빛들이 자기들의 빛을 세상을 향해 빛을 발하여 어두움에 있던 자들이 빛을 보고 빛으로 나아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왜 이 세상이 이렇게 험하고 악해지는 것일까요? 작은 빛 되는 그리스도인들이 자기들의 빛을 세상을 향해 비추지 아니하고 오히려 세상의 어두움과 함께 짝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작은 촛불 하나가 방 하나를 밝히게 되는데 수많은 교인들이 자기들의 작은 빛을 발하여 그 빛들이 다 모아진다면 온 어두운 세상은 사라지고 빛의 세계가 올 것이 틀림없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 받은 교훈은 어두운 생활을 청산하고 빛의 생활을 하라는 것입니다. 마귀가 좋아하는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께서 기뻐하실 생활을 해나가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교회에서도 좋은 신자라는 칭찬을 받고 교회 밖에서도 칭찬 받는 자들이 되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구원받은 믿음의 확신을 행동으로 보여주라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들인 우리들은 오늘 말씀을 통해 생활의 목표를 소개받았습니다. 그 목표란 주님께서 기뻐하실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기뻐하실 삶이 바로 빛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며 우리의 빛을 세상에 비추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빛은 흰색으로 나타납니다. 우리들은 빛의 색인 흰옷을 입고 다녀야 합니다. 흰옷은 바로 성도의 옷입니다. 착함, 의로움, 진실함이 바로 우리가 입어야할 흰옷입니다. 성도들은 마땅히 성도가 입어야할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데 가끔 성도들이 성도들의 옷이 아닌 검은 옷을 입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 검은 옷이란 성도의 냄새가 전연 나지 않은 옷을 말합니다. 사랑이 빠지고 그 얼굴에 기쁨과 평화가 보이지 않는 옷이며 친절한 맛이나 온유한 맛이 전연 없는 옷입니다. 그 검은 옷이란 교회에서 배운 좋은 것은 다 빼고 이기적이고 쌀쌀맞고 수다스럽고 위선적인 악세사리만 달고 다니는 옷입니다. 그런 검은 옷은 남의 옷입니다. 성도에게 맞지 않은 옷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지금 입고 있는 옷이 성도가 입어야 할 흰옷인지 벗어버려야 할 검정 옷인지 자기의 모습을 내 마음의 거울에 비춰보아야 합니다. 또 내가 입은 옷이 어떠냐고 주님께 물어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성도다운 행실로 주님을 기쁘시게 해야 하며, 그 행실로 아직 어두움의 옷을 벗지 못하는 자에게 그들이 입어야할 옷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그래서 아직 어두움의 옷을 입고 있는 자도 검은 옷을 벗고 선한 빛의 옷을 입도록 해야 합니다. 이런 삶이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사는 삶인 것입니다. 목사가 입어야 옷은 값비싼 목사 까운이 아니고 목사다운 선한 행실인 것을 여러분들은 다 동의하실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입어야할 옷도 겉치장이 아니라 성도다운 행실인 것입니다.
우리들의 하루하루의 삶에서 우리들이 입어야할 마땅한 옷을 입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이 되어지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