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고난과 영광 – 벧전 3:18-22

사도 베드로는 오늘 본문을 통해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믿음으로 고난을 잘 견디어 내도록 하기 위해 주님의 고난과 영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주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신 분이셨으나 인간들의 죄 짐을 대신 지시고 죄인같이 십자가를 지신 고난을 당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다시 주님을 살리시고 하늘에 오르도록 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히시고 무한한 영광을 받도록 하셨습니다. 모든 의인이 당하는 고난을 넉넉히 보상해주시는 하나님이심을 증거로 보여준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도 이 세상이 주는 상 말고 하나님께서 주실 상을 바라보며 죄가 없이 고난을 당한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 갚아주실 상을 생각하며 굳건하게 믿음을 지켜나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주님의 고난과 영광(18, 22) [2]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심(19-20) [3]순종한 자들을 세례를 통해 구원하심(21)입니다.

 

[1]맨 먼저 18절과 22절의 주님의 고난과 승리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8절에서는 주님의 죽으심에 대해 소개해 주고 있는데 이를 분석해 보면 한번 죽으셨고 의인으로 죽으셨다고 했습니다. 또 불의한 자를 대신하여 그들의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했으며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고 죽으셨다고 소개했습니다. 그리고 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다고 했습니다. 한번 죽으셨다는 말은 히브리서 9장 26에 주님께서 단번에 제사를 드리려 했다는 단번의 의미와 같은 뜻으로 구약시대에 매년 속죄일 마다 대 제사장에 의해 드려졌던 동물의 제사와 단 한번으로 제사를 끝내신 주님의 제사를 구별하기 위한 표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 한번 죽으심으로 인류의 죄를 구속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죽으신 것입니다. 죄인만 고통을 당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운 사람도 고통을 받을 수 있음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다만 주님께서는 자신의 죄는 전혀 없으시나 불의한 자들의 죄를 대신 지시고 돌아가셨다고 했습니다. 남을 살리기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신 희생을 소개한 것입니다. 그것도 가치가 없는 불의한 자를 살리기 위해 죽으신 것입니다. 죽으신 목적이 뚜렷합니다. 죄인들을 하나님 앞으로 인도해 내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서의 몸은 죽으셨지만 하나님께서 영으로는 살리셨다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십자가에 메달아 죽게 했지만 죽게 한 것은 몸뿐이지 영은 아니었습니다. 영은 오직 하나님만이 살게도 하시고 죽게도 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22절에서는 주님께서 당하신 고난 뒤에 누리시는 영광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땅에서 죽으신 주님을 하나님께서는 영으로 살리시고 하늘에 오르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하늘에 오르게 하시고 하나님의 우편에 앉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이란 가장 권세 있는 높은 자리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편에 앉아 계신 주님께 천사들과 권세 있는 자들과 능력들이 다 순복한다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영적인 세계의 모든 영들이 다 주님께 복종하도록 큰 권세를 주셨으니 죄 없이 당하신 모든 고난을 다 참아내신 주님께 하나님께서 넉넉히 보상해주셨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에게 모든 고난 후에 하나님께서 큰 영광을 안겨 주실 것을 소망하며 고난을 잘 참아내라는 격려를 보내는 말씀인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9절, 20절의 옥에 있는 영들에게 선포하심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19절은 해석이 어려운 말씀 중 하나입니다. 19절과 20절의 앞부분을 그대로 소개하자면 주님께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찾아가셔서 전파하셨다는 것입니다. 옥에 있는 영들이란 음부에 있는 영들, 즉 노아 시절 홍수의 경고를 노아로부터 듣고도 하나님의 경고를 믿지 않고 순종치 않았던 구원받지 못한 영들인 것입니다. 이 성경구절의 해석이 어렵다는 것은 사람은 한 번 죽으면 천국과 지옥의 운명이 결정 지워지게 되므로 죽은 이후에는 구원받지 못한 자가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전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주님께서 구원받지 못한 영들에게 찾아가셔서 선포하셨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타당한 해석은 구원받지 못한 자들에게 복음을 듣고 회개하도록 특별 기회를 다시 주기 위해 전도하셨다는 뜻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가능한 해석이라면 주님께서 사람들에 의해 죽임을 당하였으나 하나님께서 실리심으로 다시 사시어 숭리하신 사실을 선포하신 것이라 풀어 봅니다. 더 이상 풀어보는 것은 오히려 원래의 뜻에서 더 멀어질 수 있을 것이므로 이 정도에서 그치는 것이 좋겠습니다.

 

[3]마지막으로 21절의 순종한 자들을 세례를 통해 구원하심 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베드로는 노아 때의 홍수와 세례와 연관을 지으며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 하였습니다. 세례를 구원의 표라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전 10:1-2 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갈라진 홍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 살아났던 사실을 세례와 연관을 지은 것을 보게 됩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라 한 것입니다. 갈라진 홍해 바다를 건너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 위에는 구름 즉 물이 덮고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온전히 물에 잠겨 있었던 모형이 된 것입니다. 이것을 두고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한 것입니다. 또 노아때의 홍수에서도 노아의 8식구가 탄 방주도 40주야 쏟아진 물로 위아래 옆이 다 덮인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3-5절을 보면 세례를 받는 것은 그리스도와 합하여 죽고 장사지내고 또 부활의 의미가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 속에 온몸을 다 잠기게 하는 침수 세례를 시행하는 것은 예수님 당시에서부터 시행해온 세례 형식이기도 하지만 침례의 의미는 세례를 통해 나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주님과 함께 자신도 죽어 물 속에 옛 몸을 묻어버리고 물에서 올라옴으로 다시 새 사람으로 태어난다는 상징인 것입니다. 세례의 모형이 온 몸이 물 속에 완전히 잠기듯 노아 식구를 태운 방주도 물로 온전히 잠겼다가 나온 것이며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 바다 속에 온전히 잠겼다가 나온 형식을 가지고 세례와 연관을 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는 물은 곧 세례요 세례는 구원의 표라고 했는데 물론 여기에서의 물이 세례가 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의 죄를 지시고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믿고 주님만이 우리를 구원해주실 수 있는 구세주인 사실을 믿는 믿음이 전제되어 있는 것입니다. 또 막 16:16의 ‘믿고 세례를 받는 자는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말씀이나 또 행전 2:38 의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는 말씀에 순종하여 많은 물 속에 자기의 옛 몸과 옛 마음을 묻어 버리고 새 사람으로 물에서 올라오는 믿음에 따른 행동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례는 육체의 더러운 것을 씻어버리는 예식이 아니고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했습니다. 구약 율법에서는 정결 의식으로서 몸을 씻는 일이 행해졌으나 세례는 몸을 씻는 의식이 아니라 양심의 때를 벗겨 양심이 하나님을 찾아가도록 하는 예식이라 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 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죄 없으신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으므로 그 구원의 길에 들어서서 어떤 고난도 굳건히 견디어 나가 최후의 예비 된 영광에 참예하라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주님께서 예비하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영광을 누릴 자가 갖추어야 할 자격을 소개해준 말씀이기도 합니다. 장차 하나님이 예비하신 큰 영광의 나라에서 영광을 누리려면 오늘 본문 처음에 소개된 대로 주님께서 죄 없으신 분으로서 내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내 대신 죽으셨으므로 옛 나는 이미 죽은 것이나 다름없고 이제는 예수님 안에서 새로 태어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는 길을 주님께서 준비해주시기를 에수님을 자기의 구세주로 믿는 자에게 물 속에 자신을 장사지내고 다시 태어나는 상징인 세례를 받도록 한 것입니다. 세례란 믿음이 없는 물만을 말하는 것도 아니요, 물에서 세례 받지 않은 믿음만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세례란 믿음과 물이 합해진 것을 말합니다. 즉 믿음에 따른 행함을 물에서 행하는 것이 되겠습니다. 믿기만 하고 세례를 받지 않은 것도 구원이 될 수 없으며 믿지도 않으면서 행함만 있어도 안 되는 것입니다. 행함이 없으면 죽은 믿음이라 했는데 믿고 성경에서 행하도록 한 것들을 행해야 한 것입니다. 행함이란 순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두고 형식적인 어떤 화려한 제시보다 낫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에는 많은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에 참예 하기를 원하는 자라 한다면 세상 누구의 의견보다는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에 순종하는 길이 가장 안전한 길인 것입니다. 성경에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아라 했으면 그 말씀을 믿고 세례 받아 죄 사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물 속에 장사 지내는 침례가 세례의 의미에 가장 적절한 성서적 방법이라고 믿으면 그대로 실행하는 것입니다. 세례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음에도 세례는 필요 없고 믿음만 있으면 된다고 한다면 하나님께서 보장해줄 수 없는 믿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례를 받은 자는 말씀을 더 배우고 배운 말씀대로 실천해 나가야 헙니다. 또 배운 말씀대로 실천하는데 많은 고난이 있다하더라도 장차 내리실 영광을 마음에 두고 또 주님께서 당하셨던 고난을 마음에 늘 기억하며 모든 어려운 고난을 다 이겨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을 다 이겨내신 주님께 하나님께서 큰 영광으로 갚아주시듯 주님을 따르다가 당한 모든 고난을 끝까지 잘 참아낸 자들에게 하나님께서 큰 영광으로 보상해주실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첫째는 구원의 길에 바로 들어서고 둘째는 말씀을 열심히 배워 말씀에 따라서 살며 셋째는 말씀에 따라 사는 동안 당하는 모든 고난을 다 잘 참아내시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큰 영광을 다 받으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