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병이 들었던 병자가 좋은 의사를 만나 병을 치료받고 살아났다고 한다면 그 병자는 자기를 살려준 의사를 생명의 은인으로 알고 늘 은혜를 잊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죽을병이 들었음에도 자기가 죽을병에 걸려 있는 지를 모르고 있다면 자기를 살려줄 의사가 준비되어 있다하더라도 의사를 찾지 않을 것이고 죽을병을 고쳐줄 수 있는 의술을 가지고 있는 의사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건강 진단을 통해 자기 몸이 건강한가 아니면 어떤 병이 있나를 진단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모든 인류를 진단하되 모든 인류는 하나도 예외 없이 다 영적으로 죽을병에 걸린 죄인이라고 진단을 내리고 있습니다. 죄인이 죄인인지를 모르고 산다면 죄를 용서해줄 은인을 찾을 일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모든 인류는 다 죄인인 것을 선포하고 모든 인류는 죄를 용서받고 죽음에서 영원한 생명의 길을 허락하실 의사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도록 유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자기 몸에 어떤 병이 있는 지를 진단을 통해 알고 있는 자는 치료받을 수 있는 길을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찾아 나서는 것과 같이 자기가 죄인임을 아는 자는 죄의 용서를 받고 사는 길을 찾아 나서게 될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류는 죄인이라고 진단을 내린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9-12) [2]죄에 대한 신체적 비유와 죄의 영향(13-17) [3]죄를 사해줄 수 없는 율법(19-20)입니다.
[1]맨 먼저 9절부터 12절까지의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죄 아래 있음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1장과 2장 그리고 3장의 앞부분에서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두가 양심의 법과 모세의 율법을 어겼기 때문에 심판아래 있다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법을 어긴 자들을 두고 죄 아래 있다고 선포하므로 모든 인류를 죄인이라고 단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자기의 개인적인 감정으로 이렇게 단정하는 것이 아니라 구약의 말씀들을 증거로 내세우면서 모든 인류가 죄인임을 확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구약에서 인용한 말씀은 시편 14:1-3 과 전도서 7:20 의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위의 말씀을 인용하여 10절에서 의인이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의인이란 양심의 법과 율법을 완벽하게 실행한 사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도덕적으로 칭찬 받는 착한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의 의인이라는 말의 뜻은 사람들의 평가에 의해 상당히 의로와 보이는 사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하나도 지적 받을 일이 없는 완벽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의 행위로 의롭다함을 받을 육체가 이 세상에는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죄 사함 받아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인정받게 되는 것입니다.
11절에는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는 무엇을 많이 알고 그리고 깊이 아는 철인들이 많이 존재합니다. 그러나 11절의 깨닫는 자란 하나님에 대한 외적 이론과 지식을 아는 자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실지로 하나님 안에 들어오지 않고 하나님 밖에서 믿지 않는 눈으로나 믿지 않는 마음으로는 아무리 철인 중 철인이라도 하나님이 누구이신 지 또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지능의 한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또한 믿음을 갖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려고 해도 알지 못하겠지만 불신자들은 하나님을 알고 찾으려는 의지도 없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알만한 것, 그리고 하나님을 찾을 만한 것을 양심에도 주시고 세상 만물에도 주셨음에도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을 찾지 못한 것 그 자체가 죄인 것입니다.
그리고 12절에는 다 치우쳐 한가지로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했습니다. 치우쳤다는 말은 꼭 가야할 길에서 벗어났다는 말입니다. 꼭 가야할 길은 하나님이 가르치신 길인데 하나님이 바라시는 길이 아닌 자기 욕심에 따라 길을 가기 때문에 치우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일을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지 않고 자기 욕심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서는 인생이 하는 모든 일이 무익하다는 말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은 모든 것이 아무 쓸모 없다고 하신 것입니다. 선을 행한 자가 하나도 없다는 말의 뜻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믿음으로 하는 선이어야 하는데 불신자들은 믿음 없이 베푼 선이므로 하나님의 기준에 합격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3절부터 17절까지의 죄에 대한 신체적 비유와 죄의 영향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체적인 비유를 들어 인간들의 죄를 고발하고 있으며 그 죄로 인해 미치는 영향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혀로는 속임을 베풀고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데 빠르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목구멍이 열린 무덤이라는 말의 의미는 죄를 삼킬 목구멍이 크다는 뜻으로 마 23:24 에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약대는 삼키는도다 라 했는데 약대라도 삼킬 수 있는 큰 목구멍을 말합니다. 또 하나님께서 주신 혀를 잘 사용해야 하는데 그 혀로 남을 속이고 남을 저주하며 악독한 말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의 길을 걸어야 할 발이 남을 해치는 피 흘리는데 빠르다고 지적했습니다.
사람들의 신체 부위 하나 하나가 하나님께서 지으신 본래 목적대로 사용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마귀가 바라는 대로 사용되기 때문에 그들의 죄의 결과로 하나님이 내리신 평강을 모르고 오히려 파멸과 고생의 길이 된다고 했습니다. 파멸과 고생이라는 말의 뜻은 주님의 재림시에 받을 심판의 결과 당할 파멸과 고생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들이 그런 파멸과 고생을 당하게 될 것은 그들의 눈앞에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전혀 없는 죄 때문이라 했습니다.
[3]마지막으로 19절부터 20절까지의 죄를 사해줄 수 없는 율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유대인들은 자기들이 율법을 받았기 때문에 그 율법에 의해 구원이 보장된 것 같이 착각하고 자만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받은 율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없을 것이므로 오히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주고 그 율법은 율법을 어긴 자들이 죄인임을 확인해 주는 심판의 기준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 앞에서 율법을 범한 자들이 입을 벌릴 수 없게 만들 것이고 자동적으로 심판대 앞에 서게 만들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에 의해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율법 때문에 죄가 죄로 드러나고, 율법에 의해 죄가 드러나기 때문에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이란 죄인을 구원해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죄를 들어내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밖에 있는 자는 그 누구도 다 죄인이라는 교훈입니다. 이 세상에는 훌륭하다고 칭찬을 받을 만한 사람들이 많이 존재했었고 지금도 존재할 것입니다. 자기 몸과 재산을 바쳐 인류를 사랑한 훌륭한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들이 현재와 같이 좋은 여건에서 살고 있다고도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니 절망 속에서 허덕이며 살아야 할 많은 사람들이 절망을 딛고 일어나 밝은 새 세상을 살아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많은 버려진 고아를 그 누군가가 돌보았기 때문에 그들이 살아났고, 이 세상에 불우한 각계 각층의 사람들이 어려움을 딛고 일어섰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의 교훈은 세상에서 아무리 훌륭한 일을 해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양심과 하나님이 주신 법을 완벽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훌륭한 그 누구도 양심과 하나님의 법을 갖다 댄다면 법에 걸리게 된다는 말입니다. 즉 인간의 어떤 선행으로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없는 것이 인간이라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큰 죄라도 삼킬 수 있는 열린 목구멍을 가졌고, 우리의 혀로 남을 속이며, 우리의 입에는 저주와 독한 말을 내 뱉으며, 우리들의 발은 피를 흘리는데 빠르게 움직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24-25 에서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라고 고백했습니다. 마음으로는 하나님께서 하라 하신 것을 생각함에도 육신으로는 죄를 짓고 있으니 누가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 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과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모든 인간은 하나님 앞에 의로울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순간순간 육신의 생각대로 말로 죄를 짓고 마음으로 죄를 지으며, 발로 죄를 지을 수 있는 연약한 인간임을 하나님 앞에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약한 육을 가진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건져주시라고 기도하는 우리가 되어야 합니다. 때로는 우리들이 율법을 가진 유대인들처럼 내가 그 동안 행한 어떤 선행으로 구원될 수 있다고 착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는 우리들이 행한 선은 우리들이 행한 악에 비해 아무 것도 안될 것입니다. 별로 인정받을 만할 것이 없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행했던 선행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보다는 자기의 자랑으로 했을 수 도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마땅한 자세는 늘 실수 투성이인 연약한 나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늘 지켜주셔서 마귀의 입이나 손발 노릇하지 않고 하나님이 원하는 하나님의 손발 노릇하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들은 세리의 기도를 마음에 두어야 합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고 기도 했던 것입니다. 언제 어떤 일을 만날지 모르는 연약한 우리들을 불쌍히 여겨달라고 하나님께 겸손히 부탁드리는 우리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