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바울이 로마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가르치고 있는 내용을 요약한다면 죄와 의입니다. 유대인이나 이방인이나 모든 인간이 죄를 지었으므로 죄인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죄가 사면되고 의롭다함을 받았다는 내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죄의 근원이 되는 아담과 의의 근원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비교하며 죄와 의에 대하여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요사이 성도들이 구원이라든지 주님 재림시에 나타날 천국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덜하고 오히려 현실 적인 삶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본질은 죄로부터 구원되고 주님 재림시에 나타날 영광에 참예 하는 것이므로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통해 가르침을 주고 있는 것은 기독교의 가르침의 매우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교회는 성경 한 권을 택해 1장 1절부터 마지막 장 마지막 절까지 연속적으로 강해해 나가기 때문에 성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모든 말씀을 다 집고 넘어가고 있습니다. 일반 교회에서 이렇게 매주 같은 책을 연속적으로 강해해 나가고 로마서 같은 교리적인 책을 계속해서 6개월이고 1년이고 강해해 나간다면 교인들이 많이 실증이 날 것이라 생각됩니다.
말씀을 택하는 것은 성도들에게 선택권이 없고 말씀을 전하는 자에게 선택권이 있어 교인들은 가르쳐주는 대로 수동적으로 이런 성경 강해를 받고 있지만 교인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상관하지 않고 성경을 그대로 연속적으로 전하고 있는 이 사실을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큰복으로 알고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전하는 자가 자기가 좋아하는 말씀만을 골라 교인들에게 편식시키므로 성도들은 말씀에 영양 실조가 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아담으로 시작된 죄와 사망(12-14) [2]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의와 생명(15-18) [3]은혜와 영생(19-21)입니다.
[1]맨 먼저 12절부터 14절까지의 아담으로 시작된 죄와 사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2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의 한 사람이란 아담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원죄라는 말을 가끔 듣고 있습니다. 원죄란 아담이 지은 죄가 사람들에게 상속되어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죄인이라는 이론입니다. 그러나 12절에 분명히 밝히고 있지만 아담이 죄를 지어 사망에 이름같이 모든 사람들이 죄를 지어 사망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세상에 죄를 가져온 최초의 인간이기는 하지만 아담의 죄가 유전되거나 전염되어 모든 사람이 죄인이요 그 아담의 죄로 인해 다 죽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자기의 죄 값으로 죽는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이야기를 한다면 각자가 자기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것이지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이 좋은 선조들의 믿음에 의해 의롭게 되는 것이 아닌 것과 똑 같은 논리인 것입니다.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존재했지만 율법이 있기 전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않았을 뿐이라 했습니다. 율법이 있을 때에는 율법에 어긋나는 것은 당연히 모두 죄로 인정되어 죄로 알고 있지만 율법이 없을 때에도 사망이 존재해오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면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존재했다는 사실이 증거되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은 죄를 지은 인류의 첫 사람이요 또한 사망을 세상에 끌어드린 죄의 대표자임같이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지 아니한 첫 사람이요 세상에 생명을 끌어드린 대표자 인 것을 대조하여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고 표현했습니다.
[2]두 번째로 15절부터 18절까지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된 의와 생명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아담과 대조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되어 있는데 앞에서 12절에서 밝혔듯이 아담이 범죄 하여 많은 사람이 죽은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범죄 하여 자기의 죄로 죽는 것입니다. 15절의 뜻은 아담으로부터 시작된 죄와 사망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나 하나님과 예수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다고 했습니다.
16절에서는 이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을 소개하기를 아담이 가져온 선물은 사람들로 하여금 심판을 통해 정죄에 이르게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선물은 죄인들에게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선물이라 했습니다. 아담은 정죄를 가져왔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의롭다함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17절에서도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다고 하여 마치 사망이라는 것이 왕 노릇한 것은 아담 한 사람의 범죄 때문인 것 같이 오해될 수 있지만 여기에서는 예수님의 사역과 아담을 대조해 나가고 있는 방법으로 예수님의 사역에 붙인 같은 단어들을 아담에게도 붙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 한 분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았으며 그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에 맞추기 위해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사망이 왕 노릇 한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18절도 마찬가지입니다. 18절에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다고 했는데 여기에서도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의 행동으로 많은 사람이 의롭게 되었음을 아담과 비교하는 표현으로 아담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르렀다고 한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우리가 심판대에서 정죄 받는 것은 내 자신의 죄로 인해 정죄 받는 것이지 선조나 후손의 죄로 인해 정죄 받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를 요약한다면 비록 사단은 아담을 통해 세상에 죄를 들여와 많은 사람을 사망으로 이끌고 있지만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은혜를 내리시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의롭다함을 얻게 하는 선물을 받게 하시므로 그 은혜를 입은 많은 사람들이 생명에 이르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19절부터 21절까지의 은혜와 영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9절부터 21절까지는 오늘 본문의 결론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한 사람의 불순종과 한 사람의 순종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따먹지 말라는 과일을 따먹은 아담의 불순종과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십자가를 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을 대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은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되게 하였지만 한 사람의 순종은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있었으나 율법이 생기므로 더욱 죄가 죄로 인정되어 죄가 더해졌지만 아무리 큰 죄라도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는 넉넉히 의롭다함을 얻게 한다고 했습니다. 사단은 세상의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여 사망이 왕 노릇하게 하려 하지만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로 하여금 의롭다함을 얻어 영생에 이르게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아담에 속하지 말고 그리스도께 속하라는 교훈입니다. 성경 전체는 두 길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죄의 길과 의의 길, 빛과 어두움, 좁은 길과 넓은 길. 순종과 불순종, 진리와 비 진리, 사단의 길과 예수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이 두 길을 아담과 예수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아담을 죄의 대표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의 대표로 세우고 있습니다.
아담을 죄와 사망과 불순종으로 소개했고 예수 그리스도는 은혜, 선물, 의, 순종, 영생 또는 생명으로 소개했습니다.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거역하여 죄를 짓게 하여 사망에 이르도록 하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죄인들을 사망이 왕 노릇 하는 곳에서 해방시키시어 의롭다함을 얻게 하고 생명으로 왕 노릇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인생은 의인이든 죄인이든 한 번은 육체적으로 죽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이유로 가인도 죽었고 아벨도 죽었으며, 아담도 죽었고 아브라함도 죽은 것입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이 나서 한 번 죽는 것은 정한 이치이지만 어떤 이는 몸은 죽었어도 영적으로는 살아 있는 사람도 있고 몸도 죽고 영적으로도 죽은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아담의 길을 따라 산 사람은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에 영원한 사망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요, 예수그리스도의 길을 따라 사는 사람은 죄를 지었으나 죄를 용서받아 의롭게 되기 때문에 생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죽되 어떤 이는 죄 짐을 등에 지고 죽는 사람이 있고 어떤 이는 죄 짐을 주님께 풀어놓고 죽는 사람이 있는 것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길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죄 짐을 예수님께 다 풀어놓은 자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지 않거나 믿는다고 하면서도 말씀에 불순종하며 자기의 욕심에 따라 사는 사람은 죄 짐을 등에 지고 죽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아담의 길은 넓은 길이나 결국 죽는 길이고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좁은 길이나 결국 사는 길인 것입니다. 아담의 길은 육신의 생각으로는 좋아 보이는 길이었으나 결과적으로는 에덴 동산에서 쫓겨나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길은 길이 좁아 가기 힘들어도 결국은 영원히 사는 길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인 의롭다함을 얻어 영원히 사는 생명의 길을, 즉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택하도록 우리들을 인도하고 있습니다. 죄의 길인 아담의 길에서 벗어나 그리스도의 길에 들어서도록 인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내가 지금 아담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예수 그리스도의 길을 걸어가고 있는지 스스로 다 알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아담의 길은 죽는 길이므로 만일 자기가 아담의 길을 따라 걸어가고 있다면 빨리 돌이켜서 예수 그리스도의 길로 들어서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들은 우리 모두는 예수 그리스도의 길은 의롭게 되어 생명으로 들어가는 길이요 하나님이 내리신 은혜요 선물임을 깨닫고 언제나 아담에게 속하지 않고 오직 그리스도께 속하여 주님 재림시에 생명으로 왕 노릇하시기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