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주어진 율법을 다 지켜 행하도록 명하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율법을 다 지켜 행한다면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함을 받을 수 있겠지만 문제는 어떤 인간도 주어진 모든 율법을 다 지켜 행할 수 없다는 데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만일 율법의 하나라도 범하면 법을 어긴 자가 되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런 점 때문에 어떤 인간도 율법을 지킴으로는 의롭다함을 얻을 수 없고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로마서 앞부분에서 많이 강조되어졌던 것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는 구원을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내려 보내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으시도록 했으며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세주로 믿고 영접한자는 구원을 얻도록 구원의 길을 분명하게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모세 율법을 선호하는 무리들 중에는 예수 그리스도도 믿고 율법도 지켜야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에 사도 바울은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될 수 없음을 강조하기 위해 여러 각도에서 깨우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바로 앞부분인 1절부터 6절까지에서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성도들은 율법에 메이지 않고 율법으로부터 자유롭도록 자신을 지켜나가므로 성화되어 질 수 있다고 교훈 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어떤 이들이 그렇다면 율법이 악하거나 율법이 죄냐고? 반문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질문에 그럴 수 없다고 답을 하면서 율법의 존재 가치와 율법의 기능에 대해 본문에서 바로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분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가르침을 통해 율법이 왜? 주어졌으며 율법이 악이 아니고 선한 것인지를 바로 알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 원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깨닫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율법이 죄인가? [7] [2]율법의 기능[7-11] [3]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율법[12-13]입니다.
[1]맨 먼저 7절 앞부분의 율법이 죄인가?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절부터 6절까지에서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함께 죽은 것으로 표현을 했으며 이것은 성도들이 옛날 남편인 율법에 그 이상 얽매이지 않는다는 것을 강조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죄인가? 라는 질문에는 결코 그렇지 않다고 분명하게 답하고 있는 것입니다. 히브리서에서는 율법은 폐했다고 했으며 갈라디아서에서는 옛 언약인 율법은 연약하며 무익하다고 했는데 이 말의 뜻이 결코 율법이란 근본적으로 전연 쓸모 없다는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구원을 얻게 하는 능력이 없다는 뜻일 뿐입니다. 세례 요한이 선지자였으나 그를 믿어서는 구원을 얻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그 자체로서 충분히 존재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에서 내리신 것입니다.
[2]두 번째로 7절부터 11절까지의 율법의 기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을 하나님께서 내리신 이유가 있었을 것입니다. 광야 생활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필요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율법을 내리신 것입니다. 내리신 이유를 7절 하반 절부터 11절까지에서 밝혀주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밝혀주고 있는 것은 율법이 주어짐으로 무엇이 죄인지 죄의 기준을 알게 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만약 탐하지 말라는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탐하는 것이 죄인지 몰랐을 텐데 탐하지 말라는 율법이 주어짐으로 탐하는 것도 죄가 되는 것임을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무엇을 탐냈다고 해도 탐낸 것 자체를 세상 법에서는 죄로 인정하지 않지만 하나님의 법에서는 남의 것을 탐내도 죄가 된다고 죄의 기준을 정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전에는 본인이 죄인지를 몰랐지만 법을 알고 보니 마음으로 지은 죄도 죄인 것을 알게되어 결과적으로 죄가 살아나고 자기 자신은 그 죄로 죽었음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율법을 지킴으로 의롭게 되고 생명에 이르게 될 줄 알았는데 율법을 다 지키지 못함을 알고 나니 율법을 통해 생명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 계명 때문에 오히려 사망에 이르게 됨을 알게 된다고 했습니다.
또 무엇을 하지 말라는 율법이 주어짐으로 사람 속에 잠재해 있는 죄의 속성이 기회를 타서 하지 말라는 것을 한번 해 보도록 충동하므로 죄를 범하게 하니 죄에 속아 결국 사망에 이르게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율법 자체가 죄라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주어지매 죄가 기회를 타서 하지 말라는 법을 어기도록 유혹하고 충동하여 죄를 짓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이 있으므로 죄가 기회를 얻도록 했다는 것입니다.
만일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다면 죄가 죄인지 모르고 스스로 의롭다고 믿고 교만할 수 있겠지만 율법이 주어지므로 율법에서 하나님께와 사람에게 마땅히 행해야할 법을 지키지 못하면 범죄자가 되어 죄 값으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인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이 주어지므로 사람들이 지은 죄가 죄로 판정이 되고 지은 죄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엄한 심판이 주어질 줄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가르치고자 하는 율법의 기능이란 무엇이 죄인지 죄의 기준을 정해주고 그 법에 어긋나면 심판을 받게 되리란 경고를 알게 해주므로 죄를 범하지 말도록 경계해주는 역할을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3]끝으로 12절부터 13절까지의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한 율법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율법은 죄가 아니라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율법의 행위로는 인류가 구원을 받을 수 없지만 율법 그 자체는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다고 결론을 내리고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율법이 거룩할 수밖에 없는 것은 율법을 하나님께서 내리신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율법이 의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율법이란 누구에게나 차별 없이 적용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하나라도 범한 자를 용서치 않고 누구에게나 다 죄 가를 묻게 될 것이기 때문에 율법은 공평하고 의로운 것입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왜 선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율법이 선하다는 것은 죄가 죄로 드러나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스스로 죄인인지를 모르고 교만하게 살도록 했지만 율법이 주어지므로 죄가 죄로 들어 나서 스스로 죄인인지를 자각하게 해 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죄인이 죄인인 것을 깨닫게 해주는 것이 어찌 선한 것이 될 수 있을까요. 사도 바울은 로마서 처음부터 지금까지 모든 인류가 죄인인 것을 강조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율법을 강조해 오고 있습니다. 율법이 선하다는 것은 율법을 통해 스스로 죄인인 것을 깨달은 자는 자기를 구원해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율법이 죄가 있는 자를 죄가 있다고 바른 진단을 해주므로 죄를 사해주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나도록 해주는 동기를 주고 있기 때문에 율법이 선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오늘의 본문 말씀의 결론은 율법이 거룩하며 공의로우며 선하다는 것이었습니다. 율법이 선하다는 것은 어떤 인간도 율법을 다 지킬 수 없을 것이기 때문에 율법의 행위로는 구원될 수 없음을 깨닫게 하고 구원을 허락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가도록 하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이 결론이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적용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본문을 통해서 우리들이 다시 깨닫게 된 것은 인간이 행한 어떤 선행만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 세상에는 참 좋은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인간도 자기가 평생 베풀어 온 선행으로는 구원될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선행을 베푼 것이 사실이겠지만 반면에 율법에서 요구한 많은 법을 어겼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많은 선을 행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율법의 적은 것 하나를 범했다면 범죄자로서 법의 심판을 받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물론 선행을 했던 수대로 범죄한 것들을 하나씩 지워나간다 해도 선행의 숫자보다 죄의 숫자가 더 많아 죄를 다 지울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 말씀을 전해들은 우리 모두가 내가 평생 하나님과 이웃에게 선을 베풀기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해도 그 선행만 가지고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되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오늘의 본문은 우리들에게 매우 유익한 말씀이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구원은 내가 베푼 선행에 의서가 아니라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인 것입니다. 어떤 경우에도 내가 베푼 선을 기억하고 그 정도면 하나님께서 천국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시겠지 하는 생각을 갖지 말아야 합니다. 자기가 행한 행위를 의지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우리가 얻는 구원은 내가 베푼 선행을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의존하는 것입니다. 내가 아무리 큰 일을 해냈다 하더라도 나를 구원해주신 그 은혜에는 전연 미치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지 내가 행한 큰 선행으로 되어지는 것이 아님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믿는 자는 행함이 전연 없어도 된다는 말은 또 아닙니다. 구원 얻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이나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은혜가 감사하여 성도로서 행해야 할 선행을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입니다. 내가 행한 선행의 공로로 구원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됨을 확신하시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