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본문에서는 말세에 살고 있는 성도들이 마땅히 가져야 할 마음가짐과 실천에 대한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의 교훈을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생활과 친근한 단어인 자다가 깰 때, 낮과 밤, 어두움과 빛, 벗어버릴 옷과 입어야 할 옷 등의 비유를 들고 있습니다. 이민 생활을 하다 보면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 나가는 일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려운 현실입니다. 이민 생활 뿐 아니라 우리의 고국인 한국은 경제 사정이 너무 좋지 않아 중소기업이 무너지고 서민들의 삶이 너무 고달프다는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세상살이도 살아나가기가 이렇게 어려운데 오늘의 본문에서는 세상의 삶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먹고 살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므로 최선을 다해서 얻고자 하는 것들을 이뤄야 하겠지만 동시에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아니면 또는 주님 오시기 전에 우리를 먼저 부르실지 모르는 우리들로서는 이 세상 말고 이 세상 넘어 있는 우리의 삶을 위해서는 더욱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을 통해 주님의 재림에 대비하여 성도들이 살아야 할 마땅한 삶을 잘 배워 날마다의 삶에서 실천해 나가시기를 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자다가 깰 때(11-12) [2]벗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옷(13-14)입니다.
[1]먼저 11절과 12절의 자다가 깰 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11절에서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라 했습니다. 물론 이 말의 뜻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웠음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12절에서는 역시 같은 의미로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라 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논리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그 날자가 우리가 처음 믿을 때보다 더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 당시 성도들은 주님께서 자기들이 살아 있는 동안에 재림 하실 것을 기대하기도 했던 것입니다. 어떤 의미로서도 하루가 지나면 주님의 재림의 날이 하루 가까워진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주님의 재림의 날은 오직 하나님 아버지뿐이시지만 분명한 것은 사도 바울의 논리대로 재림의 시기가 사도 바울 당시의 성도들이 처음 믿기 시작할 때보다는 많이 가까워진 것이 사실이며 우리들이 믿기 시작할 때보다도 더 가까워진 것이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 재림의 시기를 가르치기 위해 열 처녀의 비유를 드셨습니다.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을 준비하고 신랑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신랑을 맞을 수 있었으나 다른 다섯 처녀는 등에 기름도 준비하지 않고 졸고 있다가 신랑이 왔으므로 그때야 기름 준비를 하느라 그들은 신랑을 맞지 못한다는 비유인 것입니다. 이런 비유를 주신 주님께서는 주님의 재림은 밤의 도적과 같이 주인이 예기치 못한 시각에 오실 것이기 때문에 항상 준비하고 있어야 한다는 충고를 주셨던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자다가 깰 때가 가까웠다거나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다고 하는 것은 재림을 소망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재림을 준비하는 삶을 미루지 말고 당장 실천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서론에 해당한 것입니다. 아침에 출근해야 할 사람이 시간도 모르고 늦잠을 자고 있다면 잘못 된 일인 것과 같이 지금은 주님의 재림이 임박한 것으로 판단되어지는 시기이므로 마땅히 잠에서 깨어나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할 때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3절과 14절의 벗어야 할 옷과 입어야 할 옷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이 낮에는 낮에 입을 옷으로 갈아입고 잠을 잘 때는 잠옷으로 갈아입는 것에 비유하여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임박한 이때에 성도들이 입어야 할 옷과 벗어야할 옷에 대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12절에 보니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고 했으며 13절, 14절에는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고 했습니다.
재림을 맞는 성도들이 벗어야할 옷은 어두움의 옷을 벗어야 하며, 방탕의 옷, 술 취함의 옷, 음란과 호색의 옷, 쟁투와 시기의 옷, 그리고 육신을 도모하는 옷을 벗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입어야 할 옷은 빛의 갑옷을 입고, 단정한 옷을 입고,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을 입으라고 했습니다. 어두움의 옷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여기에서의 어두움의 옷이란 사단이 좋아하는 옷을 말하며 빛의 갑옷이란 하나님께서 좋아하시는 옷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두움과 빛이란 세상의 밤과 낮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선과 악, 사단의 일과 하나님의 일을 상징하는 말인 것입니다.
성도들이 입어야할 옷이 빛의 갑옷과 단정한 옷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옷을 입으라고 했는데 어떤 옷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리고 성도들이 벗어야 할 옷은 어두움의 일의 옷이라고 했는데 어두움의 일의 옷이란 어떤 옷일까요? 성경에는 성도들이 벗어버려야 할 악의 옷, 즉 육의 옷에 대해 여러 곳에서 반복적으로 기록해주고 있습니다. 그중 로마서 1장 29절부터 31절까지와 갈라디아서 5장 19절부터 21절까지에 기록된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로마서에서는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수군, 비방,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음행, 더러운 것, 호색, 우상 숭배, 술수와 원수 맺는 것, 분쟁과 시기, 분냄과 당지는 것, 분리함과 이단, 투기와 술취함, 방탕함입니다. 오늘의 본문과 위의 두 말씀을 종합한다면 성도가 벗어버려야 할 옷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모든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어두움의 옷이라 했으므로 남에게 부끄러운 일이며 비난 받아 마땅한 일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신랑으로 맞을 신부인 성도들은 새 옷으로 갈아입기 위해 때 묻고 냄새나고 신랑 되신 주님께서 싫어하신 모든 옷들을 벗어버리라는 것입니다.
또 성도들이 입어야할 단정한 옷, 빛의 갑옷 그리고 그리스도의 옷은 어떤 옷일까요 성경에는 성도들이 입어야할 마땅한 옷을 여러 곳에서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중 갈라디아서 5장 22절과 23절과, 에베소서 6장 13절부터 18절까지에 기록된 것을 소개하겠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 자비와 양선과 충성, 온유와 절제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서에서는 진리, 의, 복음, 믿음, 구원, 하나님의 말씀, 기도와 간구입니다. 성도들이 벗어버린 옷 대신 이젠 늘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의 옷,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 그리고 절제의 옷을 입고 다니라는 것입니다. 또 늘 진리와 의의 옷, 복음과 믿음과 구원의 옷,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와 간구의 옷을 입으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생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주님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워진 것으로 감지되기 때문에 재림의 주님을 맞을 준비가 늘 되어 있어야 한다는 교훈입니다. 결혼식에서 신랑 입장에 이어 신부가 곧 입장할 수 있도록 신부가 입을 드레스와 갖추어야 할 모든 준비를 하고 대기실에서 대기하고 있으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재림의 시기가 많이 가까웠다고 전제했습니다. 재림의 시기가 가까웠다고 믿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정말 주님께서 오늘 밤에 오실지 내일 아침에 오실지 모른다고 믿는다면 우리들의 신앙생활은 결코 나태할 수 없으며 딴전을 피울 여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더군다나 주님의 재림은 바로 믿는 성도들에게 영원한 천국 생활의 시작이 되므로 얼마나 간절히 소망하는 것입니까?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 살았던 사람이라도 하나님이 예비하신 천국에는 도저히 미치지 못하는 삶이므로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서 너무 고생하고 살았던지 아니면 이 세상에서 고생 없이 살았던지 천국 생활을 꼭 해야 하는 것입니다. 가난과 억울함, 질병과 고통, 그리고 사망으로부터 해방되는 삶이 이어질 천국에 모두 들어가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아니 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면 바로 엄한 하나님의 벌을 받게 되어 있는데 이런 엄한 벌을 받는 자리에 들어가는 것을 피하는 길은 오직 천국에 들어가는 길뿐인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는 선택의 자유가 주어져 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살든지, 아니면 악인들만 모인 곳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 길인 것입니다. 요사이 기독교의 설교에서는 천국과 지옥에 관한 설교를 거의 안한다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아마 기독교인들이 그런 것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또 그런 것을 전파하기 위해서 설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리라 생각됩니다. 주님이 세상에 오시고 십자가를 지신 이유가 바로 그것 때문임에도 현세의 기독교는 그런 것보다는 현세적인 번영을 위한 신앙으로 탈바꿈해버린 것입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말이 되겠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기독교인들이 왜? 믿든지 아니면 믿지 않든지 상관없이 하나님이 정하신 스케듈에 따라 재림하시어 재림의 소망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 성도들에게는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와 살게 허락하실 것이며 예수님의 재림 같은 것에는 상관없이 세상적인 삶에만 관심을 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벌을 내리실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님의 재림의 시기가 날마다 하루씩 가까워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뿐 아니라 우리 인생의 삶은 늙고 젊고 와는 상관없이 언제로 끝날지 아무도 장담을 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들로서의 최선의 삶은 재림의 시기가 임박했음을 믿고 날마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맞을 준비란 마귀가 좋아하는 옷들을 다 벗고 하나님께서 좋아 하시는 옷으로 갈아입고 날마다 신랑을 기다리는 삶이 되겠습니다. 이미 오늘 설교의 본론에서 하나님께서 어떤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시는지를 소개 받았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어떤 옷을 벗어버리기를 원하시는지도 소개 받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언제 재림하실지 모르는 주님을 맞기 위해 모든 악의 옷은 벗어버리고 선한 옷 즉 빛의 옷으로 다 갈아입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 이웃을 사랑하며 내 이웃과 함께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살 소망을 갖고 열심히 신앙생활하며 겸손히 살아나가야 하겠습니다. 이 세상 것이 아무리 좋다 해도 속아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이 세상일에도 최선을 다해야 하겠지만 주님을 맞을 소망을 세상일보다 앞세워 하나님이 원하시는 옷으로 갈아입고 주님의 재림을 소망하는 우리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날마다 재림의 주님을 소망하며 더 좋은 옷을 입고 주님을 맞으려고 최선을 다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