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증거자가 되자 – 사도행전 1:1-11

오늘부터 사도행전을 가지고 강해하게 됨을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앞으로 약 1년을 조금 더 걸려서 끝나게 될 이 사도행전 강해 설교의 문을 열게되는 오늘 저는 사실상 많이 흥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 곁에서 듣고, 보고, 배웠던 제자들이 주님께서 십자가를 지심으로 다 실망하고 도망치고 말았던 바로 그 제자들이 주님의 승천 이후 완전히 변화되어 생명을 내걸고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자들이 다 되었음을 사도행전에서 보게될 뿐 아니라, 심한 핍박이 있었음에도 기독교는 말살되지 아니하고 오히려 각 지역마다 교회가 세워지는 산 역사를 기록해 주고 있으므로, 그렇게 살아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듣고 배우므로 우리 성도 각자의 신앙이 큰 영향을 받아 우리도 나약한 자리에서 일어나고 강하고 담대하며 확신에 찬 살아있는 믿음의 생활을 할 수 있게 되리라 믿기 때문입니다.

오늘부터 시작되는 사도행전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드리고, 적용하여 우리 모두의 신앙 생활이 온전히 변화 받아 날마다 일상생활에서 우리 속에 성령이 살아 역사 하는 증거가 나타나게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강해를 하기 전에 먼저 사도행전에 대한 전반적 사실을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행전은 총 28장까지는 유대인들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한 베드로의 행전이 기록되어 있고, 13장부터 28장까지는 이방인을 중심으로 복음을 전한 바울의 행전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결국 이름을 다시 짖는다고 한다면 베드로와 바울의 행전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또 사도행전에는 성령이란 단어가 70회나 기록되어 성령의 사역, 성령의 행전이라고 해도 무방하겠습니다.

저자는 누가복음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기록한 것이고, 사도행전 마지막장 28장에 사도 바울이 로마에 갇혀 있던 때까지를 기록하였고(60년경) 그가 주후 67년에 순교 당했는데 순교에 대한 기록이 없는 것으로 보아 주후 60년 이후부터 주후 67년 이전에 기록된 것으로 봅니다 사도행전의 가치와 특징을 살펴본다면,

①교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었으며, 교회가 전 세계로 어떻게 퍼져 나갔는지 복음 전도의 경로를 소개해주고 있어 기독교의 초기 역사책이므로 매우 귀중한 자료이며, 사도행전에서는 어떻게 구원을 받는지 구체적으로 방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②사복음서를 통해 유대인만을 위한 메시야의 탈을 벗고, 이방인에게도 구세주 되심을 만민의 구세주 되심을 증거 해주는 분명한 자료가 되며 유대교외 기독교를 구별해주고 있는 중요한 문서이기도 합니다.

③이런 귀한 문서를 가지고 함께 진리를 탐구하려고 하기 때문에 준비하는 자의 마음이 많이 흥분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런 문서를 통해 내 스스로의 구원관, 교회 관, 예배 관이 성경 적으로 확립될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아멘.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문 1:1-11절까지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자” 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증거 하고자 합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면,

 

[1] 첫째 부분은 1-3절까지로 사도행전을 누구에게 썼으며, 무엇을 썼는지 소개가 나옵니다.

1절에 보니 데오빌로여 네가 먼저 쓴 글에는 이라고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누가에 의해 데오빌로라는 분에게 쓰여졌습니다. 데오빌로가 누구인지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전설상으로는 누가가 은혜를 입은 데오빌로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썼다고 합니다. 은과 금으로 갚지 아니하고, 더 좋은 것 그리스도를 소개해 주므로 은혜를 갚고있습니다. 누가복음에는 1:33에는 “데오빌로 각하여” 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지위도 놓은 사람 같습니다. 이분에게 두 개의 글을 써주었는데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 나중 쓴 글은 사도행전인 것입니다. 즉 전편은 누가복음, 후편은 사도행전인데, 전편에는 주님께서 어떻게 지상에서 태어나셨고 어떻게 제자들 택하고 가르치셨으며 또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기록해 주고 있으며, 후편은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시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며 성령을 통해 어떻게 일하셨는가를 기록해 주고 있어, 전편은 주님의 지상생활을 후편은 주님의 천상 생활을 소개해 주고 있는 책이 되겠습니다. 누가는 전편을 통해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후편을 통해 데오빌로가 그리스도를 믿고 회개하고 하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도록 안내하기 위해 주님의 지상 생활을 소개하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주님의 목적인 하늘 나라를 소개해 주기 시작하고 있는 것입니다.

3절 마지막 부분에 주님께서 승천하시기 전 제자들에게 나타나시어 하나님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음을 소개해 주므로 편지 받은 사람의 관심을 이젠 하나님의 나라, 즉 천국에 대해 관심을 갖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2] 두 번째 부분은 4-8절까지로 주님의 부탁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주님의 부탁은 예루살렘을 떠나지 마라, 약속한 것을 기다리라.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이 임하시면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됨으로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에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누가복음 24:46-53까지의 말씀의 반복이 되겠습니다. 약속한 것이란 요한복음 14-16장까지의 보혜사 성령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이스라엘 나라가 망하여 로마의 통치를 받고있던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메시야가 나타나 왕이 되시며, 이스라엘 나라를 다시 세계에 우뚝 선 나라로 재건하게될 바로 그때이냐고 묻게됩니다. 그들은 늘 메시야가 나타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해 줄 것이라고 메시야만을 소망해 오던 그들이었던지라 육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으로 오해했던 것입니다.

주님에 의해 불리움을 받았고, 주님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고, 많은 이적 기사를 보았던 저들이 주님이 분명히 육적 이스라엘의 왕이 되실 줄 알고 기다렸는데 힘없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므로 이젠 그 소망마저도 없었는데 부활하시어 다시 나타나시었으므로 제자들은 다시 육적 이스라엘의 회복의 소망을 갖게되고 그 때에는 자기들도 장관이든 무엇이든 한자리라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심은 그들이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고 제자들의 관심은 세상에서 한목 쥐고 높은 자리에 차지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질문을 피하십니다. 메시야가 와서 육적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리라는 기대를 하고 지금이 바고 그 때냐고 관심을 표명하고 질문을 했지만 그들의 질문의 초점에 맞추어 대답지 않으시고 마지막 날이 언제 오든지 그 기한과 때는 하나님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는 알 바 아니요, 성령이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라는 성도들의 관심과 할 일의 방향을 잡아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언제 오실 것이냐 예언하고 계시 받고, 그런 것은 인간이 알아야 하고 할 일이 아니요, 누구의 권한이요, 할 일이라고요? 하나님의 일. 1992년 10월 재림설은 하나님의 권한 침해라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언제 주님오실 것이라는 날짜를 점치는 일이 아니라, 성령을 받고 권능을 얻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믿으십니까? 이것이 주님의 부탁입니다.

 

[3] 세 번째 부분은 9-11절까지의 나타난 주님의 승천입니다.

주님께서는 살아 계신 동안에 눈물을 흘리시매 기도하시고 제자들이 하늘 나라를 깨닫도록 가르치셨으나, 너무 이해를 못함을 아시고 부활하신 후에도 또 나타나시어 그들이 무엇에 관심을 갖고 그들이 해야할 일이 무엇인지 방향을 잡아주시고 이젠 때가 차매 부활 후 40일만에 승천하셨음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주님이 죽으심으로 소망이 없어졌던 제자들에게 주님이 부활하신 후 함께 계시므로 다시 육적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대한 소망이 다시 생겼는데 이젠 또 하늘로 올라가 버리고 보이지 아니하므로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천사가 가로되 “왜 하늘을 쳐다보느냐?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고 하였습니다.

닭 좇던 개가 하늘을 허망하여 쳐다보는 식으로 제자들이 허망하여 하늘을 쳐다보았는데, 주님의 승천은 성도들과 마주앉아 있지 아니하므로 실망해야 하는 사건입니까? 아닙니다. 요한복음 14장에 보면 주님의 승천은 우리가 있을 처소를 예비하기 위함이요, 예비가 끝나면 다시 오시겠다는 것입니다. 주님이 승천하심은 우리에게 진리의 영, 보혜사 즉 성령을 우리에게 보내주시게 되므로 우리가 진리를 깨닫게되고, 우리가 성령에 의해 보호가 되고 성령을 힘입어 권능을 얻어 땅 끝까지 그리스도의 증인이 될 수 있으므로 승천은 절망이 아니라 우리에게 새 삶을 가져다주는 축복된 사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왜 이곳에 앉아 있습니까? 우리의 뜻은 무엇이고, 주님의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는 기껏해야 100년 동안 잘 살 것만이 집착해있고 우리 주님은 우리가 영원히 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부탁하십니다. 명령하십니다. 땅 끝까지 내 증인이 되어 라는 부탁입니다.

몇 날이 못되어 성령이 임하리라는 성령은 이미 2천년 전 오순절에 임했습니다. 이젠 우리는 이미 선물로 받은 성령이 내 속에서 충만하도록 육적 갈등과 육적 욕심을 버리고 오로지 빈 마음, 청결한 마음에 성령을 충만케 하므로 모두가 능력을 얻어, 담대하게 주님의 부탁대로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증거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신학교를 나온 후에 가능합니까? 아니. 무엇을 많이 배워서 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보고들은 바른 그대로 전하며 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서 주의 나심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을 기록하여 그리스도를 받아드리도록 힘썼습니다.

성도여러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아들로서 육신으로 오셨음을 믿으십니까? 그가 죄 없으시되 만민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죄인들을 대신 십자에 달려 죽으신 사실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가 죽은지 사흘만에 하나님의 일으키심을 힘입어 부활하셨음을 믿으십니까? 아멘. 그가 제자를 보는데서 승천하시고 우리가 앞으로 살게될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지만 준비가 끝나며 올라가신 그대로 다시 오실 것임을 믿으십니까? 이 믿으신 사실들이 누가 받은 계시가 아니고 성경에 그대로 기록된 사실임을 믿으십니까? 아멘.

오늘까지 보고, 듣고, 믿고 있는 것만 전해도 충분합니다. 훌륭한 지도자이며 주님의 부탁을 충실히 전한 사역자 입니다. 우리는 할 수 없되 성령께서 함께 하시어 할 수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오히려 하지 못했던 제자들이 오히려 주님이 떠나시고 성령께서 인도하심으로 할 수 있었으며, 주님께서 직접 이적과 기사를 나타내심을 직접보고도 못했던 그들이지만 오히려 성령께서 함께 하심으로 할 수 있습니다. 주님의 탄생과 십자가와 부활과 승천을 다 전하는 증거자가 되시기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