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언약의 중보자 – 히브리서 8:1-6

우리 나라는 남북이 대화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금강산을 볼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그 동안은 금강산을 사진으로만 보아 왔는데 이젠 찾아가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사진으로만 보아왔던 금강산과 직접 눈으로 보는 금강산은 차이가 있겠지요. 요사이 가을철이라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과일들이 과일 나무에 열려 있습니다. 그런데 이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과일 나무를 사진으로만 본 것과 직접 과일 나무를 접하고 손으로 따서 먹어본 것과는 많은 차이가 나겠지요.

 

오늘의 본문을 가지고 말씀 준비를 하면서 이 말씀을 전달받는 자들은 참 복된 자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왜냐하면 그 동안 혹시 감이 달려 있는 감나무 사진만 보아오던 자였는데 이젠 감나무에 달린 감을 직접 손으로 따서 먹어볼 수 있게 되는 거와 같이 혹시 그 동안 그림자 같은 믿음이 아니라 믿음의 실체를 소개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참 진리를 깨닫고 깨닫게 해주신 하나님께 하나님 감사합니다 라는 찬양과 고백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나올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1-2) [2]자신을 예물로 드리신 그리스도(3-4) [3]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5-6)입니다.

 

[1]먼저 1절부터 2절까지의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으신 그리스도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여러 번 반복되는 말씀이지만 모든 인간은 자기들이 지은 죄로 인해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지만 오직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서 일하는 중보자에 의해 죄를 씻고 하나님께 나아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구약 율법에서는 제사장이 중보자가 되어 죄인이 죽는 대신 동물이 피를 흘려 죽게하므로 죄가 용서되었으며 새 언약에서는 죄인이 죽는 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피를 흘려 죽으심으로 죄가 용서된 것입니다.

 

1절에서는 새 언약의 중보자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옛 언약의 중보자 아론의 후손 대제사장과를 확연하게 구별해주고자 새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는 하늘에 계시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 중보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레위 계통의 대 제사장들은 땅에 있는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 봉사했던 것과 구별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부활 승천하시어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신다는 것을 알고 믿고 있는데 실지로 이것은 믿는 자들과 어떤 연관이 되어지는 것일까요? 이 말은 우리가 인간 대통령께 무엇을 부탁드리고 싶을 경우 직접 접촉이 되지 않으므로 그 누구를 중간에 다리를 놓게 하여 접촉하고자 하는데 그 중간 역할을 할 사람이 대통령 특별 보좌관을 통해 할 수도 있고 대통령과 멀리 떨어져 있는 하급 공무원을 통하는 방법 중 태통령 특별 보좌관을 통해 대통령께 무엇을 부탁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하나님께 부탁드릴 것이 많은데 그 때마다 하나님 바로 곁에 계신, 또 하나님께서 절대 신임하는 분을 통해 하나님께 접촉할 수 있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장들이 땅에 세워진 성막의 성소에 들어가 동물 제사를 통해 하나님과 화목케 했던 그 성소가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하나님 바로 우편에 앉아서 하나님께 화목케하는 그 성소가 참 성소요 참 장막이라고 했으며 땅에 있는 성소는 사람들이 지은 것이나 하늘의 성소는 하나님께서 지으신 성소라 했습니다.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된 우리의 대 제사장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가장 가까운 곳에 있는 하나님이 지으신 참 성소에 들어가시어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언제나 간구하시는 분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2]두 번째로 3절과 4절의 자신을 예물로 드리신 그리스도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모세 율법에 의해 세워진 대 제사장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인간의 죄를 용서받도록 하기 위해 성소에 들어갈 때에 무엇을 가지고 들어갔나요? 죄인대신 죽을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성소에 동믈의 피를 가지고 들어가실 육적인 자격이 없었습니다. 그는 아론의 후손이 아니라 유다 지파의 후손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동물 제사를 드릴 수 있는 제사장으로서는 자격이 없었던 것입니다.

 

제사장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께 드릴 것을 가지고 들어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동물의 피를 가지고 들어갈 자격이 없었기 때문에 동물의 피 대신 자신의 몸을 드려 피 흘려 바치셨다고 했습니다. 율법아래서의 제사장은 죄인이 가져온 동물을 가지고 제사 드려주지만 새 언약 아래서의 제사장은 자신의 몸을 희생 제물로 삼아 제사 드려 주시는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5절부터 6절까지의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되신 그리스도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큰 건물을 짓는 공사장에 가보면 앞으로 지을 건물의 모형도를 그려 붙여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모형도는 앞으로 짓게될 실물의 모형일 뿐입니다. 5절에 보니 모세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성막을 짓되 호렙 산에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이신 본을 좇아 지었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땅에 성막을 짓되 하늘에 있는 참 성막의 모양대로 지었다는 것입니다. 즉 모세에 의해 땅에 세워진 성막은 하늘에 있는 참 성소의 한 모형이요 그림자라 했습니다.

 

하늘에 있는 참 성소는 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라 될 대 제사장, 자기 몸을 드려 제사드린 대 제사장에 의해 제사 드려질 성소요, 모세의 율법에 따라 땅에 세워진 성막은 레위 지파에 의해 세워진 대 제사장에 의해 제사 드려질 성소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 때에 예수님에 의해 제사장 직분이 행해지게 될 하늘의 참 성소를 미리 예비해 주시고 그 하늘의 성소의 모형을 본 따서 땅에 모세를 통해 성소를 짓게 하여 임시로 레위 계통의 대 제사장들을 통해 매년 번제를 드리도록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임시적이요 결국 영원한 대 제사장,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서 일하실 더 좋은 언약의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예비하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그림자나 모형이 아닌 더 좋은 중보자를 바로 만나는 믿음 생활을 하라는 교훈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몇 개의 단어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땅과 하늘의 우편, 사람과 하나님, 참 장막, 참 성소 그리고 그림자와 모형. 이런 단어들은 우리들의 믿음생활에도 실체적인 믿음도 있을 수 있고 그림자에 불과한 믿음도 있을 수 있다는 암시인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에 순종하는 예수를 믿는 믿음도 있고 사람의 말을 따라 사람의 말에 순종하는 사람을 믿는 믿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되며 땅에만 소망을 두고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지 않는 믿음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배당 안에서 주일에만 믿는 믿음도 있고 예배당과 주일을 초월하여 언제 어디서나 믿음 생활을 해내는 믿음도 있다는 말이기도 하며 모양만 갖춘 믿음도 있고 마음과 몸으로 믿는 믿음도 있을 수 있다는 말이기 합니다.

 

일반 교회에서 성전이라고 부르는 예배당은 성전이 아니고 성전의 모형이고 믿는 성도가 성전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몸만 오는 것은 믿는 모형이요 주일에 몸과 마음이 함께 와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은 믿음의 실체가 되는 것이며, 성도로서 모양을 갖추기 위해 헌금괴에 헌금을 넣는 것은 모형이요 감사하여 은밀하게 헌금을 헌금괴에 넣는 것은 헌금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또 구약과 신약의 구별도 못하면서도 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믿고 따르는 것은 모형이요 구약과 신약을 구별하여 더 좋은 언약인 주님의 말씀에 따라 순종하는 믿음은 실체가 되는 것이며 어떤 교파의 교리나 어떤 교계 지도자의 말을 따라 순종하는 믿음은 모형이요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은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급할 때만 무릎 꿇고 기도하는 것은 기도의 모형이요 돈도 잇고 건강하나 하나님께 기도드리는 것은 기도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무엇이 구원인지 모르면서 남에게 믿고 천국가자고 전도하는 것은 믿음이 모형이요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전도하는 것은 믿음의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직분을 받았기 때문에 봉사하는 것은 모형이요 직분과 상관없이 은혜에 감사하여 봉사하는 것은 믿음이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있고 행함이 없는 믿음은 모형이요 믿음과 행함이 겸한 믿음은 실체가 되는 것이며 진리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무조건 믿는 것은 모형이여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감동되어 변화된 믿음은 실체가 되는 것입니다. 어떤 종교이든, 어떤 교파이던 진심으로만 믿으면 된다고 하는 믿음은 모형이요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어 실천되는 교회가 진리라고 믿는 믿음은 믿음의 실체인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교회는 주님이 오셔서 이룩될 새 하늘과 새 땅의 모형인 것입니다. 주님 오실 때에 교회가 그대로 새 하늘과 새 땅으로 들려 올라가려면 교회 안에 있는 불순물을 다 빼내야 합니다. 즉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그림자나 모형 같은 믿음을 정리하고 실체적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림자인 율법이 폐해지듯 그림자 같은 모든 믿음은 다 폐해질 것이며 오직 실체적인 믿음만 인정되어질 것입니다. 세상이 교회를 닮아가야 하는데 오히려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므로 교회들은 세속화되어가고 우리들의 믿음은 그 속에서 융화되어 하나님께 인정받을 수 없는 믿음으로 굳어져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비 진리는 다수로부터 인정받고 오히려 진리는 배척 당하는 현실이 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왜 교회들이 교회 재정가지고 문제가 되어야 하며 왜 교회들이 교회 직분의 명예를 가지고 문제가 되어져야 합니까? 이런 것들은 믿음의 실체가 아니라 믿음의 그림자에 불과한 것들이 아닙니까?

 

우리들은 믿음의 모형을 가지고 믿음의 실체인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의 실체는 사람의 말은 거절하고 주님의 말씀만을 믿고 순종하며, 하나님과 형제를 함께 사랑하며, 이 세상이 아닌 하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람을 쳐다보지 않고 빛도 없이 이름도 없이 어떤 시련에도 꾸준히 믿어 나가는 신앙이며, 하나님의 은혜에 감동하여 감사가 이어지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런 믿음을 지켜나가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