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은 예배드리러 올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와서 몸과 마음과 뜻을 다해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고 있습니다. 모세의 율법에 의해 드려졌던 동물 제사와는 전연 다른 제사 모습인 것입니다. 우리들은 동물 제사를 우리가 드릴 수 있는 예배의 하나로는 전연 받아드리지 않고 있으며 만일 어떤 교회가 그런 동물 제사를 드리고 있다면 그것은 잘못된 것이라고 쉽게 단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런 우리들의 입장을 히브리서 수신자들에게 적용해 보자면 그들은 본래 동물 제사를 드려왔었으나 기독교로 개종한 이후 동물로 제사 드리지 않고 오직 몸과 마음으로만 드리고 있었기 때문에 믿음이 약해질 때에는 동물의 피가 없이 몸과 마음으로만 드려진 예배가 과연 합당한 것인지 의문이 생길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기독교에 대한 핍박이 심하게 되므로 더욱 갈팡질팡해 질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오기 때문에 핍박이나 어떤 환난이 없을 것으로 알고 믿어 오고 있는데 오히려 핍박을 당하여 직업을 잃는다던가 또는 많은 어려움을 당하게 되므로 정녕 자기들이 받아드린 기독교가 잘못된 것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갖게 되어 다시 본래의 유대교로 돌아가려는 상황에 있었던 것입니다. 히브리서 기록자는 이들을 계속 옛 언약에서의 속죄와 새 언약에서의 속죄를 대조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속죄만이 온전하고 영원한 속죄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 번 반복되어지는 교훈을 조금씩 다른 측면에서 증거 해주고 있는 본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을 더욱 확실하게 알고 믿게 되는 좋은 기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1-4) [2]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제사(5-14) [3]성령의 증거(15-18)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4절까지의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이미 율법은 연약하고 흠이 있어서 더러워진 사람들의 몸은 정결하게 할 수 있지만 사람들의 속 양심은 깨끗하게 할 수 없음을 증거 받은바 있습니다. 또 이 율법은 약속의 씨가 올 때까지 임시적으로 시행된 법인 것을 증거 받았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그런 점을 강조해주므로 그 보다 더 좋은 언약이 필연적으로 준비되어야 함을 들어내고 준비된 더 좋은 언약을 소개해주려고 한 것입니다.
1절에서는 율법은 장차 오는 좋은 일의 그림자이지 참 형상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그림자이므로 율법이라는 그림자의 실체가 따로 있는데 장차 나타날 더 좋은 법이라고 했습니다. 즉 율법은 장차 나타날 더 좋은 법이 있음을 미리 예고하는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그림자에 해당하는 율법은 온전할 수 없는데 온전할 수 없다는 말은 해마다 동물의 제사를 드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해마다 드리는 제사 자체가 오히려 죄를 생각나게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황소나 염소의 피를 통한 제사로는 인간들의 죄를 온전히 깨끗하게 할 수 없는 약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만일 황소나 염소의 피가 단번에 사람들의 죄를 온전히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이었다면 매년 번거롭게 동물의 제사를 지내야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하나님께서는 더 좋은 것을 준비하셨고 율법은 그 더 좋은 것의 그림자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5절부터 14절까지의 그리스도의 몸을 통한 제사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림자에 해당하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아닌 그것의 실체인 더 좋은 것을 소개하기 위해 시편 40:6-8을 인용하면서 ‘하나님께서 그 이상 황소나 염소의 피의 제사나 예물을 원치 아니하시므로 그 대신 한 몸을 예비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제사를 드리도록 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를 땅에 내려 보내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보내시는 이의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에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우리 모두가 온전함을 얻게 했다는 것입니다. 14절에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단번에 드린 제물로 인해 죄인들을 거룩하게 했으며 영원히 온전케 했다고 했습니다.
우리들은 사무엘 상 15:22 에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고 했는데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은 수양의 기름을 태우는 제사가 아니고 사람들의 하나님을 향한 마음인 것을 말씀하셨는데 오늘의 본문에서도 동물의 제사를 원치 아니하시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하여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만이 온전한 속죄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3]마지막으로 15절부터 18절까지의 성령의 증거(15-18)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15절부터 18절까지에는 성령께서 새 언약에 대해 증거해주신 것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15절에 보니 ‘그 날 후로는’ 이란 말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을 기준하여 그 이후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 날 이후에는 저들과 세울 언약이 따로 있는데 그 언약은 즉 하나님의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신 6:8-9 에 “너는 또 그것을 네 손목에 매어 기호를 삼으며 네 미간에 붙여 표를 삼고 또 네 집 문설주와 바깥문에 기록할지니라” 고 하여 율법 적은 것을 손목에 매어두고 이마에 붙이고 다니며 문설주에나 바깥문에 기록해 두었는데 새 언약은 마음에 두고 생각에 기록하리라고 했습니다. 또한 저희 죄와 저희 불법을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하셨기 때문에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드릴 것이 없다고 성령이 증거했다고 했습니다. 동물의 피로 드린 제사는 온전히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에 매년 속죄제를 지내야 하고 그럴 때마다 죄를 늘 생각나게 했는데 그런 불완전한 동물의 제사와 단번에 죄를 없이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해마다 제사 드릴 때에 죄를 생각나게 하는 율법아래에서의 속죄와 구별해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옛 언약에서의 신앙의 그늘에서 벗어나 새 언약에 따른 신앙을 가지라는 교훈입니다. 어떻게 해야 옛 언약에서의 신앙의 그늘에서 벗어나서 새 언약에 따른 신앙을 갖는 것일까요?
첫째, 겉 사람의 정결에서 속 사람이 정결해지는 것입니다. 옛 언약 아래에서는 속 사람을 정결하게 할 수 없었으나 하나님께서 독생자를 통해 우리들의 모든 죄를 단번에 사해주셨는데 그 참뜻을 깨달아 늘 우리들의 속 사람이 늘 정결하게 되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기에 불편하시지 않도록 하는 길입니다. 늘 우리 마음이 청결하여 마음의 천국이 유지되는 것입니다. 옛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으신 지성소에 들어가셨지만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의 손으로 지은 장막에 거하시기를 원치 않으시며 하나님께서 친히 지으신 우리 마음에 사시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언제든지 하나님께서 들어와 사시도록 우리 마음을 청결하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사시게 함으로 우리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말씀을 늘 마음에 담아두는 자들이 되어야 합니다. 말씀을 마음에 담아둔다는 말은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여 늘 말씀에 의해 우리들의 마음이 다스려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율법을 이마에 붙이고 다니고 팔에 걸고 다고 문지방에 붙여두는 것으로 말씀을 사랑한다는 표가 되었지만 새 언약시대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말씀에 따라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우리밖에 있으면 안되고 말씀이 늘 우리 안에 있어서 우리의 마음이 말씀에 따라 움직여지는 삶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손에 들고 다니는 것으로 그치지 아니하고 늘 말씀을 보고 그 말씀대로 실천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이론이나 인간의 변명을 접고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동물을 대신 죽게 한 차원에서 이젠 내가 죽는 차원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마음과 내 몸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몸과 마음이 빠진 헌금만을 바치는 것을 원치 않으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시듯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고 하나님을 따르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안에서 자신이 살고 자신을 높이려는 자세는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과는 전연 다른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높여드리기 위해 자신이 죽은 것이 바로 새 언약에 맞는 신앙 자세인 것입니다.
이런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몸을 단번에 드리신 희생과 상관되는 삶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을 닮는 살이 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죄 없는 삶,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삶, 자신을 희생하신 삶을 사셨는데 우리 모두도 주님께서 가신 길을 따라 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