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기록자는 히브리서를 받아 읽을 수신자들에게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는 믿음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를 밝혀주고 구약시대에 믿음의 본이 되었던 인물들을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지난주에는 아벨과 에녹의 믿음을 소개해주었는데 오늘은 노아와 아브라함의 믿음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이렇게 믿음의 본이 되는 인물들을 우리들에게 소개해 주고 있는 것은 우리들에게 그런 믿음을 본받으라는 의도인 것입니다.
앞으로 계속 11장 전체에서 많은 믿음의 선조들을 소개해주고 있지만 오늘 소개되는 노아와 아브라함의 좋은 믿음을 본받아 우리들 모두도 노아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렸던 것 같이 우리들의 삶을 통해 하나님을 많이 기쁘게 해드릴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노아의 믿음과 순종(7) [2]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삶(8, 11-12, 17-19) [3]아브라함의 본향에 대한 소망의 삶(9-10, 13-16)입니다.
[1]맨 먼저 7절의 노아의 믿음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자기 자녀의 이름을 노아라고 지은 부모님들의 의미는 잘 모르지만 저는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점 때문에 노아를 아주 훌륭한 인물이었다고 존경하고 있습니다. 우리들은 오늘 본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노아가 칭찬 받고 있는 일을 창세기 기록을 통해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세상을 물로 심판하실 계획을 전해주시면서 그 홍수를 대비하여 방주를 만들어 물의 심판에서 구원받도록 지시하셨던 것입니다. 이 지시를 받은 노아는 창 6:22 에 보면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노아에게 홍수로부터 구원받도록 이런 특별한 대우를 해 주신 이유를 창 7:1 에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 고 밝히고 있는데 그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순종하는 일관된 아름다운 삶을 살아서 의롭다는 인정을 받았기 때문이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노아가 방주를 만들라는 지시를 받은 후 홍수가 나기까지는 120년이란 긴 세월의 여유가 있었기 때문에 믿음과 순종심이 좋은 노아에게도 정말 세상을 심판할만한 큰 홍수가 날까? 하는 의심도 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또 방주의 설계도에 대해서도 노아의 편의를 위한 여러 가지의 의견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는 하나님께서 홍수가 난다고 했으면 날 것으로 믿었으며 또 방주를 만들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설계도대로 방주를 만든 순종심을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그의 믿음과 순종은 노아 자신을 믿음이 좋은 자들의 대열에 들게 했지만 반면에 홍수의 심판을 믿지 않은 불순종한 백성들을 향해서는 노아의 믿음이 그들을 정죄 하는 것이라 했습니다. 믿음이란 보지 못한 것들의 증거 라 했는데 노아는 120년 후에 물로 심판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대로 믿는 믿음으로 120 년 후에 나타날 홍수를 믿음의 눈으로 보고 확신하게 된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있는 그대로 믿는 믿음을 가졌고 또 하나님의 지시라면 개인의 의견이나 주장을 세우지 않고 그대로 순종하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2]두 번째로 8, 11-12, 17-19 절의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삶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들은 지금 소개하려고 하는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의 삶에 대해서도 아주 잘 알고 있는 내용들입니다. 이 본문에서 세 가지 사건을 통해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칭찬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창세기 12장 1절에 있는 대로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지시하셨는데 그 명령을 받고 자기 고향인 하란을 즉시 떠난 사실을 들고 있으며 두 번째 사건은 나이 늙어 아이를 전연 가질 수 없는 죽은 몸과 같은 자신들의 상태였지만 아이를 갖게 될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었던 사건이며 세 번째는 창세기 22장 2절에 있는 대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명령을 듣고 지체치 않고 그대로 순종한 사실입니다.
이 세 사건 모두에 공통적인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순종한 사실입니다. 누구나 대대로 살아온 고향을 떠나고 싶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갈 곳이 어딘지를 자세히 소개하시지도 않고 고향과 친척을 떠나 하나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가라 고만 한 명령에 무조건 순종한 사실을 들고 있습니다. 물론 그가 떠날 때만 해도 그 땅이 앞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어질 약속의 땅 가나안 땅이 될 곳인지를 전연 모르고 떠났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서는 자기 고향을 떠나야할 어떤 이유도 몰랐고, 그 땅이 어떤 곳이지를 전연 몰랐지만 하나님께서 떠나라고 했으니 떠났던 것입니다. 떠나라 하신 이가 그의 걸음을 인도하실 것이며 자신의 필요를 채우실 것이고 자신의 장래를 예비하실 것을 믿고 75세에 자기 고향을 떠난 큰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또 아브라함이 99세요 사라가 90세 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육체 조건으로는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상태이었지만 하나님께서 ‘네 아내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하셨다면 죽은 몸 같은 상태에서도 아들이 있을 것을 믿었던 그 믿음을 히브리서 기자가 칭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믿음 때문에 하나님의 약속대로 이삭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세 번째의 사건은 99세에 얻은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는 명령대로 따른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들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약속 받기를 이삭을 통해 자손이 바다의 모래와 같이 번성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한다면 자손을 번성케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과 모순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이삭을 통해 자손을 번성케 하실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비록 이삭이 죽을 지라도 다시 살리실 것을 믿고 행했던 것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칼을 들고치려고 할 때 이미 이삭은 죽은 거나 다름없었고 준비된 양으로 번제물을 대신 할 때는 이삭은 다시 살아난 거나 다름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인간의 지식으로는 모순같이 보인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지혜로 그 모순을 넉넉히 풀어내시는 분이심을 아브라함은 믿었던 것입니다. 그런 아브라함의 믿음과 순종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9-10, 13-16절의 아브라함의 본향에 대한 소망의 삶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9절, 10절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셨던 점을 들고 있으며 아브라함은 그 약속의 땅에 발을 붙이고 살고 있었지만 그 땅을 자기의 본향으로 생각지 않고 마치 객지에 있는 것 같이 살았던 점을 들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소망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이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눈으로 본 주님 재림 후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을 말하는 것입니다.
13절부터 16절까지에서는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약속의 땅을 약속만 받았지 한 평도 소유하지 못하고 오직 그 땅에 사는 동안 앞으로 이스라엘 모든 족속들에게 분배될 것을 믿음의 눈으로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했습니다. 다른 면에서는 그 약속의 땅보다는 약속의 새 하늘과 새 땅을 믿음이 눈으로 멀리서 보고 환영했다고 보아도 되겠습니다. 그리고 그들 그 땅에 사는 동안에는 늘 자기들의 삶을 비유하기를 외국인이요 나그네의 삶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같이 표현한 것은 자기네들의 본향이 따로 있어서 그 본향을 소망함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만일 그 본향이 그저 고향 땅을 말하는 것이었다면 그 고향에 걸어서 돌아가 볼 기회가 있었겠지만 여기에서 말하는 본향은 고향 땅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더 나은 본향을 의미하는 것으로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했습니다. 이렇게 하늘에 있는 본향을 소망하는 자들을 두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저들의 하나님이라 하시고 저희들을 위하여 한 성을 예비하셨다고 했습니다. 이 성이 바로 주님 재림시에 나타날 새 하늘과 새 땅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첫째는 믿음의 선조들인 노아나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아 말씀을 절대 믿고 순종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둘째는 참 본향을 소망하는 삶을 살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무조건 ‘예’여야 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인간의 의견을 내세워서는 안됩니다. 성경은 우리들을 믿음으로 인도하기에 온전한 것입니다. 그 말씀을 손질하는 것은 하나님을 불완전한 존재로 끌어내리는 불경한 일이 되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놓고 비록 인간의 상식과 논리에 맞지 않은 다 해도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무조건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생활을 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어야 한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이란 말씀을 철저히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삶인 것입니다. 햇빛이 쨍쨍 쪼이는 날에 방주를 만들라고 하면 만들 것이요 잣나무로 만들라 하면 잣나무로 만드는 삶이며, 100살에 낳은 독자라도 바치라고 하면 바치라는 교훈인 것입니다.
둘째로 이 땅에 사는 동안 우리들의 본향인 하늘 나라를 더 뜨겁게 소망하며 살라는 교훈입니다. 이 본향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의 고향보다 더 좋은 고향입니다.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곳이어서 이 세상 어느 곳도 그 곳에 비교되지 않는 가장 좋은 영원한 마을인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이 좋은 마을을 준비하시고 그곳에 입주할 입주 자들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신랑이 신부를 맞아드리기 위해 기다림같이 간절히 기다리고 계십니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사는 일에도 물론 충실하게 살아야 하지만 우리들의 삶의 목적과 최종 목적지를 하늘에 있는 본향으로 정해야 하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지가 하늘에 있는 자들은 세상 삶에서도 성공적인 삶을 거둘 수 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많이 비워 지나치게 땅에 있는 것들에 대한 욕심을 점점 버려나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하늘에 있는 우리들의 참 본향을 소망하며 날마다 점점 더 가까이 걸어 나갈 수 있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