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을 대하는 필요한 태도 – 야고보서 1:1-4

오늘부터 5장으로 된 야고보서 강해가 시작됩니다. 오늘 본문의 강해에 들어가기 전에 야고보서에 대해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야고보서는 어떤 교회나 어떤 개인에게 쓰여진 편지가 아니라 모든 믿는 자들에게 쓰여진 편지로 이런 서신들을 두고 일반 서신이라고 부릅니다. 이 야고보서는 야고보가 쓴 것이 틀림없으나 신약에 나오는 여러 야고보중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 즉 예루살렘 교회에서 기둥으로 일했던 야고보로 보고 있습니다. 편지를 받은 사람은 한때 예루살렘 교회의 성도들이었지만 여러 가지의 이유로 여러 곳에 흩어져 살고 있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신앙적 권면을 하기 위해 기록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기록시기는 주의 동생 야고보가 순교하기 직전인 주후 62년경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야고보서는 당시 로마 제국의 가혹한 핍박으로 인해 성도들끼리의 사랑의 교제를 잃어버린 유대인 성도들에게 주님의 재림을 소망한 가운데 고난을 이겨내도록 권면한 서신입니다. 그리고 아울러 그들이 소유한 믿음을 적극적인 행위로 드러내어 사랑과 화평의 교제를 회복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본서는 ‘믿음을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가’라는 믿음과 행함의 문제를 중점적으로 다루고 있는 서신입니다. 우리는 본서를 통하여 진정한 신앙은 단순히 입으로 고백하는데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삶 속에서 그 신앙의 실체를 드러내는 것임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는 본서는 우리들의 신앙이 살아 있음을 우리들의 행위로써 세상에 나타내야 함을 교훈 해주고 있습니다.

 

이 정도로 야고보서를 소개하고 오늘 주어진 본문으로 들어가겠습니다.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지를 찾아보겠습니다. [1]야고보의 문안(1) [2]시험을 기쁘게 여기라(2) [3]인내를 온전히 이루라(3-4)입니다.

 

[1]먼저 1절의 야고보의 문안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야고보는 자신을 소개하기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라고 했으며 이 야고보가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에게 문안한다고 했습니다. 1절은 야고보서를 누가 기록했으며 누구에게 보낸 편지인지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는 몇 사람의 야고보가 있습니다. 12사도 중 하나인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는 행 12:2에 나오는 칼로 죽임을 당한 사도 중 최초의 순교자 야고보입니다. 두 번째로는 12사도중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사도 유다의 아버지 야고보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있습니다. 앞의 서론에서 여러 야고보 중 주님의 동생 야고보가 이 야고보서를 썼을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주님은 네 동생이 있었습니다.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입니다. 그중 바로 밑 동생인 야고보는 주님께서 살아 계실 동안에는 예수님을 구세주로 믿지 않았으나 주님의 부활 후에 믿게 되었는데 그는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로 일을 했던 인물인 것입니다. 그도 결국 순교당한 것으로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가 자신을 예수님의 동생 야고보라 하지 않고 그런 육적 관계를 온전히 떠나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자기 형님을 자기의 주라 고백하고 있으며 자기는 그의 종이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자기의 주인이시오 자기는 그의 노예라는 의미로서 그리스도를 높이고 자신을 낮추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어떤 칭호보다도 영광스러운 직임이요 칭호인 것입니다. 종이나 노예는 주인에 속해서 주인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는 종속적인 존재인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야고보는 자기의 인생을 자신을 위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한, 주님에 의한, 주님의 뜻을 실천하는 삶을 살았다는 고백이 되겠습니다. 모세, 여호수아도 하나님의 종이었으며, 사도 바울과 다윗도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도 주의 종들이 다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가 스테반의 순교 이후 박해를 피해 여러 지역에 흩어진 유대인 믿음의 형제들에게 문안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의 문안이란 믿는 다는 이유 때문에 여러 가지의 고난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평강과 은혜가 넘치기를 바라는 기원입니다.

 

[2]두 번째로 2절의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대로 야고보는 스테반이 순교 당할 정도로 기독교를 심하게 핍박한 이유로 핍박을 피해 여러 지역으로 흩어진 성도들의 마음 상태를 충분히 알고 그들에게 시련을 이기는 처방전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다는 이유만으로 생명의 위협을 받고 일상 생활에 불편을 당하고 있는 자들에게 시험을 기쁘게 여기라고 격려하고 있습니다. 핍박을 피해 피난 와있는 자들에게 기뻐하라니 안 맞는 말같이 들리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런 시련이 다 지나간 뒤의 상태를 믿음으로 눈으로 바라볼 수만 있다면 시험 자체는 힘들지만 시련 뒤의 유익한 결과 때문에 기뻐할 수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이북에서 남한으로 피난 오신 분들은 시련 중에 있는 자들에게 기뻐하라고 한 야고보의 말을 충분히 이해하리라 믿습니다. 피난 오는 당시에도 그렇고 피난 와서 자리잡기까지 피난민들이 얼마나 고생이 심했겠습니까? 그들을 두고 기뻐하라고 외치는 선지자가 있었다면 그 당시에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겠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에서 뒤를 돌아본다면 피난 오면서 당한 그 고난은 다 잊었고 그 고생의 몇 갑절의 보상을 다 받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시험을 당한 자들에게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벧전 1:6 에 보면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도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시험을 당하게 되면 근심하게 되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시기를 잘 믿음으로 참아낸다면 곧 그 시련에 넉넉한 보상이 주어지게 되므로 시련을 기쁨으로 받을 수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비가 오면 땅이 다져지는 것과 같이 성도들은 여러 가지의 시험을 통해 신앙과 인격의 허점들이 메워 지고 성숙한 자들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금이 용강로에 녹여 보다 순금을 만들어 내듯 성도들에게 닥친 모든 시련은 우리의 믿음을 보다 순수하고 단단하고 온전하게 만들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시련후의 결과를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시련을 만나거든 기뻐하라는 권면인 것입니다. 시련을 통해 성도들을 훈련시키시고 양육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모든 성도들을 더욱 잘 훈련하여 하나님의 사업에 쓰임 받도록 하기 위해 여러모로 훈련시키시는 하나님을 생각해본다면 시험을 기쁨으로 맞을 수 있으리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시련에 대한 우리들이 갖고 있는 현재의 인식을 바꾸어야 하는 것입니다. 시련을 부정적으로 받아드리지 말고 시련을 긍적적인 면으로 받아드리라는 말이 되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게 최선의 것이 아닌 것은 주시지 않는다는 확고한 믿음 아래 지금 나에게 주신 시련이 내게 필요한 것이며 그 시련은 나에게 유익을 가져다준다고 믿고 여러 가지 시련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3절과 4절의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2절에서 시련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했는데 4절에서는 시련을 기쁘게 여겨야할 이유를 답해주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인내심은 일상생활에서나 믿음 생활에 절대적으로 있어야하는 요소입니다. 인내심이 없는 사람은 가볍고, 인격적으로 부족함이 늘 노출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인내심이 있는 사람은 그 인내심을 통해 자기 자신의 삶을 성공적으로 이끌고 또한 남에게나 하나님께 쓰임 받는 인물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에게 절대적으로 있어야할 그 인내는 여러 가지의 시련을 통해 채워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5절에서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는 말은 어려움을 조금 참다가 포기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능히 그 시련들을 이겨내도록 하실 것이므로 끝까지 참아내라는 권면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모든 시련을 기쁨으로 온전히 인내하라는 교훈입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해 가족들의 핍박을 받고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 재정적 손실을 보고 있습니까? 순수한 믿음을 지키기 위해 주변의 조롱을 받고 있습니까? 믿음을 지키기 위해 당하는 모든 시련을 기쁘게 여기고 끝까지 인내하라는 교훈입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가끔 당하는 모든 시련을 기쁘게 받아드리고 온전히 인내하라는 교훈입니다.

 

옛 서양 격언에 ‘생각이 바뀌이면 행동이 바뀌이고 행동이 바뀌이면 운명이 바뀐다’ 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가끔 당하는 시련에 대한 생각을 바꾸어야 합니다. 시련을 꼭 부정적으로만 받아드리려 하지 말고 내게 유익이 올 수 있음을 아신 하나님께서 나를 훈련시키기 위해 주신 것이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시련이 지금 나에게는 아주 쓴 약이지만 결과는 나의 믿음과 인격을 완성시키는 좋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라는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심을 믿으셔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우리 모두는 인격적으로나 신앙적으로 인내심이 약합니다. 그런데 그 인내심이 시련을 감당해 나가는 과정에서 만들어진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지키는 인내, 가난과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는 인내, 나를 비방하는 자들을 믿음으로 대하는 인내, 남의 흉을 말하지 않는 인내, 세상의 많은 유혹을 뿌리치는 인내, 모든 탐욕을 참아내는 인내 등 우리들에게 꼭 있어야 하는 인내가 어려운 시련을 참아내는 과정에서 얻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인내를 만들어 내 속에 채우기 위해서 모든 시련을 긍정적으로 받고 끝까지 인내를 온전히 이루므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완숙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님들이 우리 생활 주변에서 일어나는 모든 시련을 내게 유익할 것이기 때문에 주어진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받고 그 시련을 온전한 인내로서 능히 이겨내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