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첫 오순절에 교회가 예루살렘에 세워진 이래 예루살렘으로부터 전파되기 시작한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들에게까지 전달 될 수 있었던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 복음이 우리들의 손에까지 전달될 수 있었던 것은 수많은 순교자와 바울과 같은 신실한 전도자들이 손에 들려 있는 복음을 손에서 놓아버리지 않고 계속 그 다음 사람에게 전달해준 결과인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사도 바울도 이젠 나이 많아 하나님의 부르심 문턱에 와 있었으며 자기가 손에 가진 복음 전도의 책임을 디모데의 손에 쥐어주면서 복음을 계속 전달하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전달받은 우리 모두도 우리 손에 들려 있는 복음을 다른 사람의 손에 들려주어 이 복음이 더 많은 사람의 손에 들려져서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시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는데 우리의 몫을 해내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바울의 명령(1-5) [2]사도 바울의 소망(6-8)입니다.
[1]맨 먼저 1절부터 5절까지의 바울의 명령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복음 전도의 사명을 성공적으로 해내도록 하기 위해 복음 전도에 대한 특별한 명령을 내리고 있습니다. 전도의 명령을 주되 1절에서는 이 명령이 어디에서부터 왔는지 주어진 명령의 근원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하고 있어서 이 명령은 바로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온 것임을 밝히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19절 20절에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고 복음 전도의 명령이 주어졌는데 이 명령이 바로 주님의 명령인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명령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기를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분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복음 전파의 명령자 예수 그리스도는 명령을 받은 모든 자를 앞에 세워두고 명령을 잘 지켰는지 잘 지키지 않았는지를 심판하실 분임을 명심하고 명령을 성실히 준수해야 한다는 의도로 명령 자를 소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1절에서 명령의 근원을 밝힌 사도 바울은 2절에서 명령의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명령의 내용은 말씀을 전파하라는 것입니다. 말씀이란 사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복음을 말하는 것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몸으로 오신 것과 십자가에 죽으셨음과 부활과 재림에 대한 것이며,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이 행해야 할 모든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말씀이란 세상의 철학과 사상, 또 윤리 도덕, 교파의 교리나 헌법과 전통을 말하는 것이 전연 아닙니다. 말씀이란 사람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손질된 것이 전연 아닌 성경에 수록된 순수한 말씀 그대로를 말하는 것입니다.
순수한 말씀을 그대로만 전한다면 교인들로부터 인기가 없겠지요? 그래서 3절과 4절에서는 순수한 말씀을 그대로 받기를 싫어하게 될 때가 이를 것을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때가 이르리니 세상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 고 한 것입니다. 성경에 있는 말씀을 그대로 받아 자신을 성경 말씀에 따라 고쳐나가기를 거절하고 오히려 성경을 손질하여 자기의 귀에 듣기 좋고 자기 마음을 즐겁게 하기를 원하게 될 것이라 했습니다. 즉 시대와 환경에 맞추어 적당히 손질된 설교가 인기가 있어 그런 현대판 교파주위와 현대판 열린 예배를 선호한다는 예언인 것입니다. 그들의 관심은 어떤 교회가 보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있는가 가 아니라 어떤 교회가 보다 사람들의 뜻을 찾아 즐겁게 해주고 있는가 에 관심을 두게 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세상은 무엇을 구하든지 상관 말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전하되 그들이 구원받는데 초점을 맞추어 오래 참음으로, 또 때로는 책망하고 권면하라고 했습니다.
또 모든 일을 신중하게 자신을 지키면서 복음을 전하고 복음 전도에 따른 고난을 달게 받으며 전도인으로서의 맡은 바 직무를 감당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디모데도 그 당시의 사역자들과 같이 시대 흐름에 따라서 사랍들이 좋아하는 손질된 복음을 전한다면 고난 대신 환영과 대우를 받게 되겠지만 그 시대의 사람들이 싫어하는 말씀 그대로의 전달은 많은 고난과 핍박을 각오했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례 요한은 정직하게 하나님의 멧시지를 전하다가 목 베임을 당했는데 그 같은 고난들이 복음 전도자를 따라다닐 것이기 때문입니다.
[2]두 번째로 6절부터 8절까지의 사도 바울의 소망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6절에는 사도 바울이 자기의 임종이 임박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관제와 같이 내가 자신이 부음이 되고 나의 떠날 기약이 가까웠도다’라 했습니다. 관제란 제사지낼 때에 제물 위에 붓는 술 같은 것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제사지내는 제물의 술에 비유하여 이제 붓게 된다는 말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 동안도 그의 몸과 마음을 다 바쳐서 복음 사업에 헌신하였으나 이제는 자기 자신의 마지막 길인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과 같이 드리는 때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날 기약이 가까웠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복음 전도로 인해 당하는 수많은 고난을 염두에 두고 육신의 편안함만을 생각한다면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고 고백한 바 있었는데 이젠 그가 바라던 그 때가 온 것입니다.
우리들이 임종을 눈앞에 두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될까요? 사도 바울은 7절과 8절에서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는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전쟁터에서 싸운 군인과 같이 최선을 다해 복음 전선에서 싸웠으며, 운동 선수같이 달려야 할 모든 코스를 다 달렸으며, 믿음의 생활에서 흔들림이 없이 끝까지 믿음을 지켰으므로 전쟁에서 승리한 용사나 운동 경기에서 승리한 선수가 월계관을 받듯이 하나님이 예비하신 의의 면류관을 의로우신 재판장 되신 주님께서 주실 것이라는 소망을 표현한 것입니다.
여기에서 눈여겨볼 것은 의의 면류관을 주시되 이로우신 재판장이 주실 것이라는 대목입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란 공정하게, 법대로, 행위대로 판정하신다는 의미로 세상의 불공정한 상과 구별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의의 면류관을 자신의 기준에 따라 받는 것이 아니고 의로우신 재판장에 의해 결정되는 일이므로 하나님의 뜻에 맞게 살라는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만 의의 면류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 주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재림과 심판을 소망하면서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따라 살아온 모든 자에게 의의 면류관이 주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우리들에게 말씀을 전파하라는 교훈입니다. 디모데 전도자를 비롯하여 모든 성도들은 말씀을 전파할 책임을 맡았습니다. 이 책임은 주님 앞에 설 때까지 계속하여 해 내야 하는 책임이기도 합니다. 이 세상에는 수많은 전파자들이 있어 자기들 나름대로 말씀을 전파하고 있는 것입니다. 문제는 주님 재림 하실 때에 의로우신 재판장으로부터 이의 면류관을 받을 수 있는 복음 전파자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의의 면류관이 보장된 전파자들이란 복음을 전하되 복음을 전달받은 자들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능력이 있는 복음을 전달하는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보장하는 구원의 방법과 전연 상관이 없는 것을 가르치는 자는 의의 면류관이 보장될 수 없는 것입니다. 즉 복음을 손질하여 구원의 방법도 성경과 다르게 가르치고 구원받은 자들이 드리는 예배도 성경과 다르게 행해지고 교회의 모든 제도가 성경과 차이가 있는 그런 것을 가르친다면 어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의의 면류관을 주시겠습니까?
우리 교회 성도들은 특수한 사명을 받았습니다.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란 말은 남들이 좋아하든 싫어하든 이란 의미가 있는데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즉 남들이 싫어하든 좋아하든 성서적인 믿음을 소개하는 일입니다. 우리들이 교회에서 배우고 실행하고 있는 그런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 교회 성도들이 말을 잘 하지 못한다 하드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에 나오신 나이가 얼마 되지 않았어도 상관이 없습니다. 성경적 진리를 요약한 우리 교회의 소책자를 진리를 갈급 하는 자들에게 전달함으로 말씀을 전파한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게 되는 길이 있는 것입니다.
또 우리 교회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도록 홈페이지 주소를 소개하는 것도 한 방법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실천하는 것이 성경적임을 확신한다면 우리가 말씀 안에서 확신한 것을 자신 있게 남들에게 소개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저는 저 자신을 두고 자랑할 것이 없는데 자랑할 것이 하나 있다면 우리 교회가 사람의 교훈과 세상의 전통에서 온전히 자유롭고 오직 신약 교회의 신앙 모범에 따라 순수한 기독교를 실천하려는 교회에 속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도 자긍심을 가지고 우리 교회를 이웃들에게 소개해도 됩니다. 이런 확신 가운데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들에게 마지막 날에 의의 면류관을 씌어주실 것입니다.
모든 성도님들이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다 가고 믿음을 지키심으로 사도 바울이 소망했던 의의 면류관을 다 받으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