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 요한은 하나님을 빛이라 하셨고 하나님과 반대되는 사단의 세력을 어두움이라 했습니다. 선하고 의로운 일은 빛이요 악하고 죄 된 일은 어두움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시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빛 가운데 살기를 원하시며 반대로 사단은 어두움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자들이 어두운 가운데 머물러 있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빛의 길은 영생이요 어두움의 길은 영원한 벌을 받는 길이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를 따르는 자들이 빛 가운데 거하도록 말씀을 통해 권면하고 양육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종 사도 요한은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빛 가운데 거하기 위해서는 세상을 사랑치 말라고 권하고 있습니다. 오늘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는 하늘과 땅이 불타 없어질 때에 함께 불타 없어질 세상을 사랑치 말고 빛 가운데 거하여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두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영적 성장(12-14) [2]세상을 사랑치 말라(15-17)입니다.
[1]먼저 12절부터 14절까지의 영적 성장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권고에 들어가기 전에 영적 성장에 대해 쓰고 있습니다. 12절부터 13절, 그리고 14절에서 반복하여 두 번이나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을 아이들, 아비들 그리고 청년들로 구분하여 그들의 영적 성장에 대해 회상시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들을 구분해 본다면 아이들이나 자녀들이란 믿음 생활을 막 시작한 초신자들로 볼 수 있으며 청년은 믿음이 활발히 성장하고 있는 사람들 그리고 아비들이란 믿음이 온전히 성숙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12절과 13절에서 사도 요한은 자녀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이유를 말하기를 그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죄 사함을 얻었기 때문이라 했으며 아비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그들이 태초부터 계신 주님을 알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청년들에게 이 편지를 쓰는 것은 악한 자를 이겼기 때문이라 했습니다. 또 14절에서 같은 말을 반복해서 아이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아버지를 알았기 때문이요, 아비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기 때문이요, 청년들에게 이 편지를 쓴 것은 청년들이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 속에 거하고 그들이 흉악한 자를 이기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12절부터 14절까지를 요약해본다면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는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며 예수 그리스도는 죄 사함을 주시는 분이심을 증거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태초부터 계신 분이시며 십자가의 희생을 통해 우리의 죄를 사해주신 분이심이라는 것은 우리의 믿음의 시작이요 본질인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는 영적 성장을 확인하는 것으로 맨 처음에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므로 죄 사함을 얻었고 그 다음 예수 그리스도와 아버지에 대한 지식을 갖고 말씀 안에 거하므로 믿음이 점 점 확고해지고, 그 확고한 믿음으로 마귀를 대적하여 이겨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이 편지를 받아 읽을 자들이 정상적으로 믿음이 잘 자라나고 있음을 확인해주는 말씀입니다. 믿음이 막 시작한 어린아이 시절에서 시작하여 믿음이 활발해진 청년 시절, 그리고 믿음이 완숙해진 어른 시절에 이른 자들에게 글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은 영적으로 성장해 나가야 함을 강조한 말씀으로 생각됩니다.
[2]두 번째로 15절부터 17절까지의 세상을 사랑치 말라 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요한은 빛 되신 하나님과 온전한 사귐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곳을 세상이라고 부릅니다. 눈에 보이는 세상이든 눈에 보이지 않는 세상이든 여기에서 말한 세상이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사단의 세력아래 있는 곳을 말합니다. 세상과 반대되는 말은 하나님 혹은 하늘 나라가 되겠습니다. 요한 복음 3장 16절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라 했는데 여기에서 말한 세상은 인류를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류를 불쌍히 여기셨다는 뜻이며 눈에 보이는 세상을 사랑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사도 요한이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는 것은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사랑치 말라는 것이며 또 하나님보다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더 사랑치 말라는 것입니다. 마 6:24 에 보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한다 고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도 사랑하고 동시에 세상도 사랑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마 10:37 에는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않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그 무엇이라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내 직업이나 내 취미 때문에 하나님 섬기는 일이나 신앙 생활 하는 것을 밀쳐내서는 안되며, 내 가족이나 그 무엇이든 사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나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나 다름없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사도 요한은 15절에서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않다고 했습니다. 사도 요한은 앞부분에서 ‘하나님과 사귄다’ ‘하나님을 안다’ ‘빛 가운데 거한다’ 라는 말을 ‘하나님을 사랑한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나님을 따른다’ 라는 말과 같은 뜻으로 설명해오고 있습니다. 그런 뜻에서는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없는 자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며, 하나님을 믿는 자가 아니며 하나님을 따르는 자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 되므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가 되지 못할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16절과 17절에서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난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좇아온 것이라 했으며 이 세상도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한다 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말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이란 필요 이상 또는 도를 넘는 욕심과 자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은 갖고 싶고 채우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러나 꼭 필요한 그 이상을 갖고 채우는 것은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됩니다. 또 우리의 눈은 볼 수 있어야 하나 그 눈이 보고 필요 이상이 욕심을 내게 한다면 역시 세상을 사랑하는 결과가 되며 자랑도 지나치면 교만이 되고 세상을 사랑하는 결과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지나친 욕심들은 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좇아난 것이라 헸습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16절에서는 삶의 목표를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지 않고 지나친 욕심에 초점을 맞추는 것을 지적하였고17절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은 다 없어질 것이라는 허무한 것임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의 눈에는 부귀도 영화도 다 크게 보이되 때로는 하나님보다 더 크게 보일지 모르나 이 세상도 이 세상의 모든 것도 정욕도 다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만 영원히 살아 남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왕년의 유명한 대통령이나 재벌 그리고 인기를 누렸던 유명 연예인들뿐 아니라 악랄한 인물들까지도 다 지나가고 최근에는 뉴욕 쌍둥이 빌딩도 다 지나갔습니다. 이와 같이 앞으로도 이 세상과 함께 우리가 욕심을 부려 이룩한 세상의 모든 것들은 다 지나가되 삶의 목표를 오직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면서 세상 욕심을 접고 산 자만이 영원히 살아남는 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기 위해서 세상을 사랑치 말라는 교훈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께서 만세 전부터 계획하신 구원의 계획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고 그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죄 사함을 얻어 구원받은 존재들입니다. 그리고 말씀을 통해 양육되어 보다 더 하나님에 대해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성령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갈 소망을 갖게된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땅에 발을 딛고 살고는 있으나 우리의 마음은 영원한 하늘 나라를 소망하며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가 하나님을 따르는 것을 싫어하여 시시 때때로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도록 우리의 마음이 악해지도록 또 교회생활을 멀리하도록 끌어내리려고 할 때마다 마귀의 시험을 물리치며 믿음을 지켜온 존재들입니다. 이와 같이 지금까지 최선을 다해 지켜온 그 믿음을 주님 오실 때까지 잘 유지하고 더 성장된 믿음을 보존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세상이나 이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 무엇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 것이 대통령과 같이 높은 명예와 권력의 자리이거나 아니 오늘 먹을 것을 벌어와야 하는 미천한 직장이거나 그것이 하나님 섬기는 일보다 우선 순위가 되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또 혹시 그것이 자기의 장래를 좌우하는 일생에 한 번 있는 귀중한 기회로 생각되거나, 내 생각에 이것은 그 무엇보다도 우선 순위에 두어야 하는 긴급한 일이라고 생각될지라도 그 것을 하나님보다 우선 순위에 두어서는 세상을 사랑하는 것이 되고 세상에 있는 것을 사랑하는 것이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긴급하고 우선 순위가 될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요 내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제쳐놓고 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앞세운다고 하면 이런 것들은 세상으로부터 난 것이므로 세상이 불타 없어질 때 다 없어지고 말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그런 것들을 사랑하지 말고 내가 하나님의 은혜로 얻은 믿음을 지키고 믿음을 키우는 일을 귀하게 여기고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는 돈도 명예도 지식도 다 중요하고 이 세상에서 우리들 개인 개인에게 일어나고 있는 모든 일이 다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이 우리들의 믿음을 지키고 키우는 일보다 더 중요하지는 않습니다. 그런 것들 때문에 믿음 생활이 뒤로 밀려나서는 안됩니다. 이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세상의 긴급한 일들을 하나님보다 우선 순위에 두고 해결하면서 믿음 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고 세상에 일어난 긴급한 일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하나님 섬기는 일을 우선 순위에 놓고 세상을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 세상에서는 둘 다 똑같이 먹고살고 또 살아 남지만 주님 재림시에는 하나님 중심하며 이 세상의 모든 일을 뒤로 재치고 하나님을 사랑한 자만이 살아 남는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고 지금도 먹고살며 또 영원히 살아남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