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한 교인을 판단할 책임 – 고린도전서 5:9-13

자녀를 둔 부모로서는 우리 자녀들이 혹시나 나쁜 친구들을 만나 나쁜 것을 배울까봐서 걱정들을 하게 됩니다. 요사이 신문 방송에서는 인터넷이란 것이 음란물을 너무 많이 소개하고 있어서 청소년들이 쉽게 음란물을 볼 수 있고 그것에 빠지면 빠져 나오기 어렵다고 하니 부모님들은 이것저것 걱정이 많습니다.

 

우리 부모들로서는 자녀들에게 기껏 할 수 있는 것은 네 친구 누구누구가 혹시 나쁜 친구는 아니냐? 너 인터넷에서 나쁜 것을 보는 것 아니지? 정도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에게 묻는 질문에 대한 자녀들의 대답은 뻔합니다. 다 좋은 친구들이어요. 걱정 마세요. 이런 대답을 듣는 것으로 걱정은 끝이 나고 별다른 방법이 없어요. 물론 더 적극적인 부모님들은 나쁜 학생들이 없다고 보는 사립학교에 보내거나, 아예 학교에 보내지 않고 집에서 부모가 직접 교육을 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자녀들을 잘 가르쳐보려고 나쁜 친구들과 떼어 두려고 자녀를 한국으로 아예 보내버리거나, 학교를 전학시키거나, TV 나 인터넷을 끊어버리거나 모든 방법이 동원될 수 있으리라 봅니다.

 

오늘 소개된 본문에서는 사도 바울이 말씀으로 낳은 자녀들인 고린도 교인들을 어떻게든지 나쁜 교인들로부터 물들지 않고 거룩한 성도들로서 티도 없고 흠이나 주름 잡힌 것이 없는 주님의 신부로서 정결한 모습을 유지하도록 하기 위한 처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인들을 성도 즉 거룩한 무리라고 불리웁니다. 또 거룩한 무리들이 모인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 또는 ‘그리스도의 신부’ 등으로 불리우고 있는데 오늘 본문에서는 교회가 정결한 신부가 되려면 악을 교회 내에서 추방하고 또한 악한 자들과 사귀지 말라는 분명한 처방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소개받는 우리 성도들 한분 한 분이 이 교훈을 잘 소화하여 우리 각자가 정결한 신부가 될 뿐 아니라 우리 교회가 정결한 신부가 될 수 있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닌 대상(9-10) [2]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할 대상(11) [3]교회가 판단해야 할 대상(12-13)입니다.

 

[1] 맨 먼저 9절부터 10절까지의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인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9절에 보니 ‘내가 너희에게 쓴 것에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하였거니와’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지금 쓰고 있는 고린도 전서 말고 다른 편지를 고린도 전서 앞서서 보냈음을 짐작할 수 있겠습니다. 그 편지가 오늘날에 남아 있지는 않으나 고린도 전서보다 더 빨리 쓰였으니 우리가 그 편지의 이름을 붙인다면 뭐라고 붙이겠어요? 고린도 전전서가 될 수 있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전전서에 쓰기를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고 써보낸 모양입니다. 그렇다면 고린도 교회에 성적으로 부도덕한 일들이 있음을 알고 이를 시정하고 또 교회를 그런 성적 부도덕한 나쁜 친구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런 자들과 사귀지 말라’고 써보낸 모양입니다. 자녀를 둔 부모들의 심정과 똑 같지요?

 

고린도 전전서를 받고 고린도 교회 교인들은 몇 가지로 오해가 생겼을 것이고 그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지금 고린도 전서 5장 9절로 13절을 쓰고 있는 것입니다. 어떤 오해가 가능했을까요? 첫 번째의 경우는 음행하는 나쁜 사람들이 고린도 도시에는 너무 많이 있으므로 그들을 만나지도 않고 사귀지를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하겠어요? 고린도 도시를 떠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또 두 번째의 경우는 산에 수도원을 짓고 사회와 동떨어져서 숨어사는 생활을 할 계획을 세울 수 있었을 것이고 세 번째의 극단적인 방법은 죽어야 하는 방법이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오해를 하고 있는 고린도 교회에 사도 바울은 오해를 풀어주기 위해 10절을 주고 있습니다. 10절을 보니 ‘이 말은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 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니라’고 써보낸 것입니다.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는 방법은 무엇입니까? 죽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10절의 의미는 이 세상에 사는 한 이 세상에서는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이나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을 터인데 내가 어찌 그런 자들을 도무지 보지도 말고 만나지도 말라고 했겠느냐는 말입니다. 바울이 지적한 자들 즉 음행하는 자들, 탐하는 자들, 토색하는 자들, 우상 숭배하는 자들이란 어떤 자들일까요? 음행하는 자들이란 우리들이 우리들의 수준에서 얼마든지 답을 할 수 있는 성적으로 부도덕한 일들을 말합니다. 부부 관계 이외의 성행위이거나, 동성 연애이거나 사회적으로 비난을 받을 수 있는 성적인 부도덕성을 말하는 것입니다. 탐하는 자들이란 지나친 욕심을 말합니다. 가난한 자들은 안중에 없고 필요 이상으로 욕심을 부리는 것입니다. 토색하는 자들이란 도적질하다시피 하여 빼앗아가는 약탈 자들을 말하는 것이며 우상 숭배란 하나님 이외의 잡신을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이런 자들은 이 세상에 사는 한 날마다 길거리에서 만나고 또 상거래를 할 때에 만나고 하여 이들을 만나지도 않고 보지도 않고 전연 사귀지도 않는다는 것은 전연 불가능한 일이므로 사도 바울이 말한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사람들”이란 이 세상 사람 즉 불신자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 결혼한 부부가 결정하기를 아이를 낳으면 그 아이가 이 세상의 나쁜 것을 다 배울 것이 뻔하므로 아예 아이를 낳지 말자고 했다면 아주 잘한 결정일까요? 하나님께서도 이 땅에 사람이 태어나게 해봐야 죄만 지을 것이므로 낳자 마자 다 죽게 하거나 아니면 아예 사람이 태어나지 못하게 태를 다 막아버리셔야 할까요?

 

요한 복음 18장 15절에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기도하신 내용을 이해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으리라 봅니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란 기도입니다. 이 세상이 너무 악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살다가 악을 만날 수밖에 없는데 악에서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 드리는 것은 그들을 하나님 앞으로 데려가 달라는 것이 아니라 악에 빠지지 않게 지켜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배에 물이 들어간다면 배가 물 속으로 가라앉게 되겠지만 배속으로 바다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지켜주시라는 기도와 같은 것입니다. 배는 바다 위에 떠 있기 위해 만들어진 것인데 물이 무서워서 산에 매둔다면 배가 무슨 가치가 있으며 성도가 세상에 물들까봐서 산 속에 숨어산다면 독생자 예수를 이 험악한 세상에 내려보내신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성도들은 이 험악한 사회에서 죄인들을 만나고 사귈지라도 자기 자신을 세상과 구별하여 지켜서 그들에게 빠져들어 가지 않고 오히려 소금과 빛의 직분을 감당해서 그들에게 빛을 증거하여 그들도 빛을 맛볼 수 있게 해야 함이 하나님의 뜻이므로 죄인 된 세상사람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는 말이 아니므로 오해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11절의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11절에서 도무지 사귀지 말아야할 대상을 분명히 해주고 있습니다. 1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입니다. 즉 도무지 사귀지 말아야할 대상은 믿지 않은 이 세상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성도란 이름을 가진 자 중에서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이런 자와는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10절에서 보다 2가지의 악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후욕하거나 술 취한 자입니다. 후욕이란 남을 헐뜯기를 잘하는 중상 모략하는 사람입니다. 남을 쉽게 헐뜯어 상처를 입히는 사람이나 술을 즐겨 취한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도 말고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오해를 하지 말아야할 것이 있습니다. 어찌 악에 젖은 세상 사람은 사귀어도 되고 성도 중에서 악에 물든 사람은 사귀어서는 아니 되냐는 오해입니다. 세상 사람과 사귄다고 하는 말이 그들의 악에 동조해서 악과 타협하라는 말이 아니며 세상에는 악이 있을 수밖에 없으니 악한 자들을 만날 수밖에 없으며 그들을 접촉해서 전도의 기회도 삼을 수 있겠으나 거룩해야할 교회에 악이 들어와 있다면 교회를 악으로부터 성결케 하기 위해서는 악을 교회로부터 철저히 추방하여 행여나 성도들에게 전염이 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하는 이유로 성도라는 자가 그런 악을 행할 때에는 철저히 죄인과의 거리를 두고 멀리해야 한다는 뜻인 것입니다. 교인 중에서 음행하는 자나 욕심만 부리는 자나, 약탈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중상하는 자, 술 취한 자와는 사귀지 말고 함께 음식도 나누지 말라는 교훈입니다.

 

[3]세 번째로 12절과 13절의 교회가 판단해야할 대상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교회가 정결한 주님의 신부가 되게 하기 위해 악의 요소를 교회에서 추방하라고 강경한 처방을 지시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마땅히 해야할 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세상 사람들은 세상 끝날에 하나님께서 심판을 하실 것이므로 교회가 불신자들을 판단하는 것은 자기의 일이 아니나 교인 중에서 악을 행하는 자가 있으면 판단을 하고 듣지 않으면 교회에서 내 쫓아야 하는 책임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인들은 다시 확인해야 하겠습니다. 어떤 자를 내 쫓으라고 했나요? 성적으로 부도덕한 자들, 지나치게 세상 욕심에 차 있는 자들, 중상 모략하는 자들, 술 취한 자들, 귀신을 섬기고 점을 치는 자들을 사귀지도 말고 교회에서는 내 쫓으라고 했습니다. 이런 자들은 누룩과 같아서 쉽게 온 교회가 악에 물들게 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현대 교회가 이런 명령을 준수할 수 있을 정도로 교회가 권위를 가질 수 있어야 합니다. 교인 수가 절반으로 줄어들더라도 내 쫓을 수 있어야 할 것이며 돈줄이 다 끊겨도 내 쫓을 수 있어야 합니다. 또 그런 자와 사귀지 않으므로 내 수입에 ,내 직업에 당장 위협이 온다 할지라도 그들과 단절해야 합니다. 하나님 체면은 무시하고 사람 체면 때문에 그런 자들에게 직분을 주거나, 재정적으로 운영이 안되니 그런 자들을 쫓기는커녕 우대하는 곳은 하나님의 교회가 아니라 세상의 교회일 뿐일 것입니다. 그들의 소망은 새 하늘과 새 땅이 아니라 이 세상의 명예와 체면을 즐김으로 끝나버리는 것일 뿐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무엇을 배웠습니까? 오늘 배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글자 그대로 우리들의 이름은 성도 즉 거룩한 무리이므로 우리들 스스로 악에서 철저히 보호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라면 음행이나, 탐욕이나, 우상 숭배나, 토색이나 중상 모략이나 술 취하는 일이 자기 바로 가까이 있는 것들입니다. 얼마든지 악의 세력은 우리들을 자기들께 속해서 자기들의 지배아래 있도록 하기를 바랄 것이나 반대로 하나님께서는 험악한 세상에서도 악에 빠지지 아니하고 자기를 세상과 구별되게 지켜서 주님 오실 때에 신랑을 맞아 하늘 나라의 영광을 누리는 것입니다. 악으로부터 지켜달라는 주님의 간절한 기도를 늘 기억하여 작은 악에도 지지 않고 날마다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다.

 

내게는 손해가 되고 어떤 피해가 오더라도 나를 악으로부터 지키기 위해 사귀지 말고 함께 먹지도 말아야 할 자들을 늘 조심성 있게 경계해야 하겠습니다. 나뿐 아니라 내 교회 성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교회의 재정이 많이 줄어들고, 교인 수가 많이 줄어든다고 하더라도 내 쫓아 버리라고 한 대상들을 미련 없이 쫓아버릴 수 있는 권위를 갖는 교회가 되기를 원합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들 이 세상에 내려보내시고 십자가에 못박아 돌아가시게 했으며 사도 바울과 같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피를 흘리게 한 것입니다. 예수님과 모든 선지자들의 피를 가치 있게 하기 위해 성도들 각자가 최선을 다해 자기가 정결하도록 하고 교회가 정결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