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의 몸 – 고린도전서 15:35-49

우리들이 죽었다가 주님 재림시에 부활할 때에는 어떤 몸으로 다시 살아날까요? 우리들은 현재와 똑같은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는 죽은 사람이 어떻게 다시 살아날 것이며 어떤 몸으로 살아날 것인가에 대한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말씀을 통해 성도는 주님 재림시에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배워왔기 때문에 성도들이 부활하게 될 것은 믿고 있으나 부활 때에 어떤 몸으로 살아날 것인가에 대해서는 잘 모를 수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오늘의 말씀에서는 부활의 몸에 대해 우리들이 혹시 라도 잘못 알고 있는 것에 대해 바로 잘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본문의 가르침을 보다 명확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의 의문을 제기하고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에스겔서 37장에 보면 뼈와 뼈들이 서로 연결되고 그 마른 뼈에 살과 힘줄이 붙어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 있는데 이 말은 과연 부활의 몸을 설명한 것인가? 성도의 시체를 화장해버린다면 뼈가 다 가루가 되어 버렸는데 부활을 소망하지 않은 잘못을 저지른 것인가? 또 최근 괌에서 Kal 기 사고가 있었는데 시체자체도 찾지 못할 정도로 아예 분해되어 버린 사람들의 몸은 부활이 가능할 것인가? 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로부터 부활의 몸에 대한 말씀을 전달받은 우리 모두는 본문이 가르치는 말씀을 잘 받아드리시어 부활의 몸에 대한 온전한 지식과 믿음을 갖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기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생각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고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부활한 몸의 형체(35-41) [2]부활한 몸의 체질(42-44) [3]부활한 몸의 형상(45-49)입니다.

 

[1]맨 먼저 35절부터 41절까지의 부활한 몸의 형체애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고린도 교회 교인 중에는 부활을 아예 믿지 않은 자도 있고 또 더러는 부활이 있다해도 그 부활은 몸의 부활은 없고 오직 영의 부활만 믿는 자들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질문을 제기하기를 한번 죽어서 이미 몸이 썩어버렸는데 어떻게 썩은 몸이 다시 살아날 수가 있으며 또 다 썩어버렸던 그 몸이 어떤 형체로 다시 살아난다는 말인가? 였습니다.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고 하면서 하나님 믿기를 한사코 저항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도 없고 만지게 할 수도 없으므로 무슨 말로해도 믿지 안으려 할 것입니다. 이와 같이 부활을 믿지 않은 자들의 입장에서는 다 썩어버린 시체가 어떻게 다시 살아날 것이며 또한 뼈도 몸도 산산조각이 나서 다 흩어져 찾지도 못한 시체가 어떻게 다시 조립되어 살아날 수가 있겠느냐고 부활 자체를 부정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런 자들을 향해 자연계와 우주 천체를 예로 들어 부활의 실체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36절에서 사도 바울은 부활을 믿지 못하는 자들을 ‘어리석은 자’라 책망하면서 씨앗을 심어서 싹이 나고 자라고 열매맺는 진리를 예로 들어 부활의 진리를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리석은 자들은 죽은 몸이 어떻게 살아나겠느냐고 하지만 씨앗의 경우를 본다면 씨앗을 심어 그 씨앗이 썩지 않으면 싹이 나지 않고 그 씨앗이 오히려 썩게될 때에는 싹이 나고 자라는 것을 볼 수 있는데 그런 자연 현상에서 보아도 죽은 자의 부활이란 하나님의 세계에서는 너무나도 자연스러운 일이라는 것입니다. 또 심겨진 것은 씨앗 알갱이 이지만 씨앗이 썩어 싹이 나서 자란 형체는 심겨진 씨앗의 모양과는 전연 다른 형체로 살아나는 사실을 예로 들고 있습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씨앗이 심겨지고 썩어 싹이 날 때에는 심겨졌던 씨앗의 모양과는 전연 다른 형체로 싹이 나고 자란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씨앗의 교훈을 통해 죽은 몸이 다시 살 수 있다는 사실과 부활 때에는 무덤에 묻히고 썩어졌던 옛 몸의 형체와는 다른 형체로 부활할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또 이 땅에 사람의 형체가 있고 짐승의 형체가 있으며 또한 새의 형체가 있듯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하나님이 원하시는 부활의 형체로 만드실 것이라는 교훈입니다. 또 하늘에는 해와 달이 있고 또 별이 각각 다른 형체를 가지고 있을 뿐 아니라 심지어는 같은 별들까지라도 각각 다른 형체를 가지고 있음같이 부활의 몸의 형체는 하나님의 주권에 의해 정해질 수 있는 것이지 꼭 우리 인간들의 경험과 지식에 따라 옛 몸과 꼭 똑같은 형체로 부활되어지는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의 모습은 살아 계실 때와 같은 모습이었음을 안 우리들은 우리가 다시 살아날 때에는 현재의 우리의 모습과 거의 같은 모습으로 부활할 것으로 믿어지나 몸의 체질은 현재와는 전연 다른 체질로 바뀌어 살아날 것이라는 것입니다.

 

[2]두 번째로 42절에서 44절까지의 부활의 몸의 체질에 대해 생각해 보겠습니다. 42절부터 44절에서는 부활의 몸은 어떤 체질일 것인가? 에 대해 답을 주고 있습니다. 우리들의 현재의 몸과 부활의 몸을 대조하면서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2절에서는 우리의 몸은 죽으면 썩어지는 것에 대조하여 부활의 몸은 썩지 않은 몸으로 다시 산다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몸의 체질은 사람이 죽으면 곧 썩도록 지어져 있습니다.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미이라같은 것을 만들고 있지만 죽은 사람마다 다 썩지 않게 한다면 이 세상은 죽은 시체로 가득 체워지리라 생각됩니다. 그러나 부활할 몸은 영원히 썩지 않을 몸으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죽지 않으니 썩지도 않을 것입니다. 또 43절에 보니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산다고 했으니 우리의 몸은 육신의 약한 일로 실수하고 죄를 지어 늘 스스로와 남에게 욕되고 부끄러움을 면할 수 없지만 새로운 몸은 육신이 약하게 지어지지 않기 때문에 욕된 것은 끝나고 영광스러움만 들어낼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옛 몸은 약하나 부활의 몸은 강하게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현재 몸은 병이 나고 피곤하며 교통 사고에 목숨을 잃을 수밖에 없는 약한 몸이지만 새로 살아난 몸은 강하게 지음을 받기 때문에 그 이상 아픔과 질병과 사망이 있지 않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또 44절에서는 신령한 몸으로 산다고 했습니다. 현재 우리들의 몸은 글자 그대로 육의 몸입니다. 육의 욕심이 있고 혈기가 있으며, 배고픔이 있고 고통이 있으며 질병과 사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새로 살아날 몸은 이런 것에서 완전히 초월하는 신령한 몸으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몸의 체질은 썩지 않고 강하고 영광스럽고 신령한 몸의 체질로 다시 살아난다고 했습니다. 성경을 잘 못 해석하여 에스겔서에 있는 뼈에 살이 붙는다는 이야기는 이스라엘이 다시 회복된다는 비유인데 이를 부활과 연결시키므로 부활에 대한 오해를 낳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3]마지막으로 45절부터 49절까지의 부활의 몸의 형상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옛 몸과 부활의 몸을 대조하기 위해 아담의 몸과 부활한 그리스도의 몸을 비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잘아는 대로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고 생기를 받아 산영이 되었지만 그리스도는 죽은 자를 살려주는 영이라는 것입니다. 또 첫 사람 아담은 육의 사람이나 그리스도는 신령한 자라 했습니다. 또 첫 사람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땅에 속한 자이지만 그리스도는 근본적으로 하늘에 계신 분으로 하늘에 속한 자라고 했습니다. 이와 같이 옛 몸은 아담의 형상을 닮아 육의 사람이요, 땅에 속한 자의 형상이지만 부활의 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므로 하늘에 속한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들이 확신한 교훈은 부활의 몸은 우리들의 옛 몸과는 전연 다른 체질의 몸으로 다시 산다는 것입니다. 다른 체질이란 현재 우리의 몸의 약점이 전연 없는 온전한 몸으로 다시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 우리들의 옛 몸의 약점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들이 현재 우리의 몸에 대해 어떤 불만을 갖고 있습니까? 짧은 생명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이 무엇일까요? 사랑한 자가 세상을 떠난 것입니다. 우리의 옛 몸은 어느 순간에 호흡이 멎게되는 약점을 갖고 있습니다. 또 우리 옛 몸은 피곤하고 병들고 사고나면 몸이 상처 나고 부러지도록 약하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저는 지난 수년 전에 우리 교회에 다녔던 교인 중에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젊은 두 사람이 마음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하나는 안 미영 학생으로 아직 고등학생인데 교통사고를 당해 목숨을 잃었으며 다른 한 사람은 정아 엄마라는 사람으로 며칠이면 첫돌을 맞을 어린아이의 엄마가 교통사고를 당해 역시 세상을 떠난 일입니다. 이 젊은 여인은 미스 코리아로 뽑힌 미인이었지만 사고로 아름다움이 완전히 이그러졌을뿐 아니라 생명까지 잃어버린 것입니다. 튼튼하다는 벤즈를 탔는데도 그 벤즈가 그녀를 구해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에 약한 몸으로 창조했기 때문에 그 약함을 그 무엇도 메꾸어줄 수 없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옛 몸은 먹지 않으면 쉬 배고프고, 조금만 일을 하면 피곤해서 쉬어야 하고 나이 많으면 몸이 늙어지는 약점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여자들에게 갱년기 장애니 골다공증이니 산후 부작용등 고통을 치뤄야하는 존재로 창조되었고 고혈압이니 당뇨병이니 비만증이니 심장병이니등 몸에 많은 약점을 갖고 태어난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 부활할 때에는 그런 모든 약점이 다 보완된 몸으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을 때에 어떤 몸으로 죽었던지 전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어떤 병을 앓다 죽었던지? 남자로 또는 여자로 죽었던지 상관이 없습니다. 또 흑인으로 주었던지 백인으로 죽었던지 상관이 없으며 부자로 죽었던지 거지로 죽었던지 전연 상관되지 않은 몸으로 부활하는 것입니다. 화장을 하여 옛 몸이 가루가 되었던지, 비행기 사고로 온 몸이 다 흩어졌던지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태어날 때에는 사람의 족보에 따라 태어나지만 다시 살아날 때에는 하나님의 같은 족보로 모두 새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다시 살리실 때에 그런 옛 몸 조각은 전연 불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체질을 닮은 사람으로 부활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죽지 않는 영원한 몸으로, 먹지 않아도 배고프지 않고 병나지 않으며 화장품을 전연 쓰지 않아도 되는 체질의 피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오래되어도 늙지 않고, 부딛혀도 깨지지 않는 그런 신령한 체질로 부활한다는 사실입니다. 여자 남자가 구별되지 않고 늙고 젊고가 구별이 되지 않으며 잘나고 못난이가 구별되지 않은 몸으로 다시 살아난다는 것입니다. 양반 쌍놈이 구별이 되지 않으며, 경상도와 전라도가 구별이 없고 백인, 흑인, 멕시칸이 전연 구별되지 않는 천사와 같은 신령한 존재들로 부활한다는 것입니다. 또 문이 잠긴 방에도 열쇠없이 듫어갈 수 있고 자동차를 타지 않아도 이동이 가능한 그런 체질의 몸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죽을 때에는 땅 사람으로 죽지만 다시 살아날 때에는 하늘 사람으로 다시 난다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가시드래도 절망하지 않는 것은 새로운 몸으로 다시 나기 위해서는 언젠가는 한번 옛 몸을 벗어버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죽은 자를 두고 불쌍히 생각지 않는 것은 늘 약해서 죄지을 가능성을 갖고 있는 육을 벗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썩지 않을 하늘에 속한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날 소망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