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서는 고린도 교회가 일부 악한 무리들의 충동에 의해 혼란했던 일들이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는 좋은 소식을 접한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감사하는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일시적으로는 지나치게 푸대접을 받았지만 끝까지 진리의 길에서 굳건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대처해나가게 될 때에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악한 무리들을 넉넉히 이기게 해주신 사실을 체험을 통해 감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는 그런 어려운 경지에서도 낙담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의 자세를 잃지 않은 모습을 우리들에게 보여주면서 우리들도 아무리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자세를 흩뜨리지 말고, 또 어떤 그럴듯한 이유와 변명이 있다하더라도 복음에 손질을 하여 떼어 내거나 붙이지 말고 복음 그대로 보존하고 그것을 남들에게 그대로 전달하라는 교훈을 주고 있습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 모두가 사도 바울의 삶을 본받아 어떤 불의의 도전에도 굴복하지 아니하고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주님 안에서 이기게 할 것을 믿고 그리스도인이 풍겨야 할 마땅한 향내를 피우고 말씀을 받은 그대로 지켜나가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주신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고린도 교회로 인한 바울의 심적 고통(12-13) [2]하나님께 감사(14-16) [3]말씀의 순수성(17)입니다.
[1] 맨 먼저 12절, 13절의 고린도 교회로 인한 바울의 심적 고통에 대해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가 있는 고린도 교회를 바로 잡아주기 위해 고린도 교회를 잠시 방문했다가 너무나도 부당한 대접을 받고 빨리 고린도를 떠나왔던 것입니다. 고린도를 떠나와서 고린도 교회의 잘못을 지적하고 시정을 요구하는 눈물어린 편지를 디도 편에 인편으로 보내고 디도로부터의 어떤 소식을 기다리고 있었으나 디도로부터 아무런 소식이 없어 안절부절한 바울의 심정을 12절과 13절에서 잘 나타내주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인들은 거짓 교사의 선동에 속아넘어가 사도 바울에게 부당한 대우를 했던 것입니다. 그들이 사도 바울을 대적하여 퍼부었던 공격은 사도 바울은 두려워서 고린도 교회를 방문 못할 정도로 약하고 용기가 없는 사람이다, 말이 우둔하다, 속임수로 성도들의 금품을 빼앗기까지 한다, 예루살렘 교회로부터 받아온 신임장이 없는 가짜 사도다 라고 모함을 했던 것입니다. 이런 험악한 모함을 받은 바울은 고린도를 떠나와서 드로아 지방에 전도하려고 와보니 드로아에 전도의 문이 열려 전도의 좋은 기회를 얻었으나, 디도로부터의 소식이 없어 마음이 편치 않아 드로아를 떠나 마케도니아로 갔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고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가 써보낸 눈물의 편지로 인해 고린도 교회 성도들의 마음에 새로운 상처를 준 것은 아니었을까? 디도가 빨리 돌아오지 못한 것은 큰 봉변을 당한 것은 아닌가? 또 구제 금을 걷어오다가 오는 길에 강도를 만난 것은 아닌가? 등 너무 큰 근심에 빠져 드로아에서의 전도활동을 계속하지 못하고 마케도니아에 오고야 말았다는 것입니다. 아마 디도를 보낼 때에 드로아에서 만나든지 늦으면 마케도니아에서 만나자고 약속을 한 듯 합니다. 그래서 디도가 드로아에 빨리 오지 않으므로 혹 마케도니아에 간 것이 아닌가하여 마케도니아로 서둘러간 듯 합니다. 드로아에 간 것이 디도를 만나러 간 것이 아니고 전도하러 갔으나 고린도 교회문제로 마음에 큰 고통이 있어 전도의 좋은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를 지속하지 아니하고 마케도니아로 떠나왔다는 바울의 고통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2]두 번째는 14절로 16절까지의 하나님께 감사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에 와서 디도를 만나 고린도 교회의 좋은 소식을 들을 수 있었는데 고린도 교회가 눈물어린 바울의 편지를 받고 잘못을 시정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되었던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이 기쁜 소식에 대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내용이 14절부터 16절까지입니다. 그는 두 가지에 대해 감사하고 있는데 하나는 항상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승리하신 것 같이 믿음을 가지고 그리스도안에서 행할 때에 항상 이기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동안 고린도 교회를 인해 큰 고통 속에서 참아내기 힘든 가운데 악이 선을 이기는 듯 했으나 그 시련의 기한이 지나고 이젠 모든 악이 항복하고 진리와 선이 승리하도록 하신 하나님께 무한히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는 사도 바울을 대적하는 거짓 교사의 선동으로 복음 아닌 다른 복음이 진리인양 행세를 하므로 진리가 비진리에 가리우는 듯 했으나 고린도 교회가 무엇이 악하고 무엇이 선하며, 무엇이 진리이고 무엇이 비진리인지를 분별할 수 있게 되므로 교회 안에서 악의 세력을 추방하므로 사단의 세력으로부터의 승리를 차지하게 된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주안에서 승리케 하셨기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감사하고 있는 것은 생명을 가져다주는 복음을 전하게 하므로 죽을 자들을 살리게 하셨으므로 이에 감사한다고 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와 같이 주님께서 맡기신 전도의 사명을 감당하고 성도로서의 빛과 소금의 직분을 감당하는 것 자체를 그리스도의 향기를 발하는 것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자체가 생명이시오, 사랑이시오 빛이신데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과 빛을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들에게 발하게 하신 사실을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생명과 사랑과 빛을 좋은 냄새를 풍기는 향내에 비유하여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했는데 사도 바울에게 이 그리스도의 향기가 되도록 하신 사실을 하나님께 감사한 것입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이 뿌린 이 향기가 어떤 자들에게는 살려주는 생명의 향기가 되고 또 어떤 자들에게는 죽이는 사망의 향기가 되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 말은 주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를 지셨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므로 이 십자가가 구원의 십자가가 되었지만 어떤 이들은 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조롱하고 십자가의 믿음을 거절하므로 십자가는 그들에게 걸림돌이 되어 사망을 자초한 것과 같은 맥락에서인 것입니다.
[3] 크게 세 번째로 17절의 말씀의 순수성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전한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그대로, 하나님 앞에서와 주님 안에서 그대로 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바울 당시에 거짓 선지자나 거짓 교사들이 자신들의 유익과 목적에 따라 복음을 수정 보충하여 개량종 복음을 전한 것과 차별화를 분명히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대에도 영혼의 구원보다는 사업적인 측면에서 기독교와 예수의 십자가를 팔아먹는 무리들이 있을 수 있는데 그 당시의 그런 무리들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고린도 교회에서 사도 바울의 복음을 거짓 복음으로 매도하고 자신들이 전한 복음이 진짜라고 한 자들을 두고 말하고 잇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 당시 수다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였다고 지적하면서 자신이 전한 복음의 순수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했다는 말은 복음 전도의 목적이 자신의 이익을 추구한다거나, 또는 모양새는 마치 생명과 사랑과 빛의 복음같이 보이나 실지로는 알맹이가 빠진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현대판 기독교중 영적 구원보다는 육적 축복을 내세워 신도들을 끌어 모으고 헌금을 거두어드려 치부하는 무리들의 복음과도 같은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에서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첫째 교훈은 교역자나 교인 그 누구도 어려운 시련 가운데서 이김을 주실 하나님을 끝까지 의지하라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말도 안되는 부당한 대우를 받았지만 결국은 하나님께서 마귀의 세력을 다 굴복시키고 이김을 주시듯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에게 결과적으로는 이김을 주신다는 확신입니다. 바울과 같이 고난을 당하는 교역자도 많고 반대로 교역자로부터 말도 안돼는 부당한 대접을 받는 교인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 누구도 이런 일을 가지고 피나게 싸우거나 욕설로 이겨내려고 한다면 승리할 수 없는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믿음으로, 주님이 가라하신 진리의 길에 서 있으므로 마지막 승리를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혹 부분적으로 미흡한 점이 있을지라도 그 나머지는 주님 오실 때에 온전한 승리를 안겨 주실 것이며 그 상대에게는 완전한 패배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주먹이 센 자가 승리가 아니고 밀어낸 자가 승리가 아니라 밀려났어도 주님 편에 선 자가 승리자인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교훈은 우리 모두도 그리스도의 향기를 내는 자들이 다 되어야 하겠다는 것입니다. 맛있는 음식이 썩으면 악한 냄새를 내게 되는데 그리스도인도 성령에 따라 살면 성령의 열매를 맺어 향기를 풍기고 빛을 발하게 되나 혹시 썩으면 악한 냄새를 피워 그 악취가 사람들의 코를 찌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과 행동에 그리스도의 냄새를 풍기는 그리스도의 향기들이 다 되셔야 합니다.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고 다니는 성도들은 화장품 점에서 향수를 사서 뿌리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 모두는 몸에 뿌리는 향수를 뿌려 향내가 나도록 할 것이 아니라 마음과 몸에서 풍겨 나오는 그리스도의 향내를 풍기는 성도들이 다 되셔야 하겠습니다.
세 번째는 말씀의 순수성을 그대로 보존하고 전하는 종들이 다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여호와의 증인과 같이 열심히 전도하는 단체들이 있습니다. 열심히 전도하는 것만 따진다면 그들이 상은 다 차지할 것으로 봅니다. 그러나 농부는 주인이 밭에 뿌리도록 명령한 바로 그 씨앗을 뿌려야지 다른 씨앗을 뿌렸다면 아무리 열심히 쉬지 않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씨를 뿌렸다하더라도 칭찬은커녕 불순종과 목이 곧은 책임을 물어 크게 책망을 받게될 것입니다. 복음은 씨앗과 같은 것입니다. 씨앗 그대로 뿌려야지 다른 씨앗을 뿌리거나 개량종을 뿌리는 것은 일군의 몫이 아닌 것입니다. 우리는 일군이요 하나님은 주인이십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순수한 복음에 색칠을 하거나 변경하여 개량 복음을 만들어 내서는 아니됩니다. 교회 이름도, 교회 조직도, 세례 의식도, 예배 의식도 받은 대로 지켜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만일 성경에 기록된 것에 더한 자에게는 책에 기록된 재앙을 더할 것이요, 혹 기록된 것을 뺀 자에게는 거룩한 성에 참예 함을 제하여 버리겠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주도 하나요, 성령도 하나이며 믿음도 세례도 하나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교파마다 믿음도 다르고 세례도 다르고 예배도 다르고 있습니다. 좀 안다는 신학자들은 이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 중에서의 선택이지 불순종이 아닌 것 같이 말하고 있지만 세례가 하나라고 했고 믿음이 하나라고 했는데 둘로 셋으로 만들어 추가했다면 이것은 불순종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순수한 복음 그 자체를 실천하고 그 자체를 전하는 것이 우리들의 사명인 것을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받은 교훈이 우리 성도들의 생활에 베어서 하나님의 충실한 아들과 딸들이 다 되시어 하나님이 내리시는 큰상을 다 받으시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