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 전도의 자세 – 고린도후서 4:1-6

성탄절을 맞아 여러분들에게 크리스마스카드를 보내드리지 못했으므로 말로 카드를 대신하려고 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가정마다 개인마다 즐거운 성탄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력으로 성탄절기가 되어 오늘 주일은 성탄을 축하하는 행사가 교회마다 다양하게 진행되리라고 봅니다. 우리 교회에서는 일반 교회들이 전통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크리스마스 행사를 모방하여 그대로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본래 12월 25일이란 예수님의 탄일이 아니고 태양신을 섬기는 이방 교도들이 이날을 태양신의 탄생일로 지킨 날로 이방 교도들이 이 날을 축제의 날로 지켰던 날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축제에 기독교인들이 참예하는 경향이 있어 이를 막기 위해 기독교에서 아이디어를 내서 이 날을 아기 예수의 탄생일로 정해서 시행하므로 시작된 축제가 되어 오늘에 이르기까지 각 교회에서 이를 지켜오고 있는 것입니다. 각 교회들이 12월 25일이 예수님의 탄생일로 가르치고 있는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해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아기 예수의 나심을 축하하는 어떤 외형적인 행사보다도 주님의 오신 목적에 알맞게 우리들 각자의 속사람이 변화되는 것이 진정한 성탄 축하행사가 된다는 사실을 증거 하므로 금년 성탄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가 세상에 아기 예수로 내려오신 사실은 우리들에게 큰 의미를 가져다주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말구유에 누어 있는 아기 예수를 기억하고 기념하는 것이 중요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기 예수는 하나의 과정에 불과하므로 우리들은 말구유에 태어나서 누워 있는 아기 예수에서 우리들의 눈을 돌려 죄인중 괴수였던 사도 바울을 변화시킨 예수를 바라보자는 것입니다. 핍박자였던 사울을 목숨의 위험을 무릅쓰고 구원의 복음을 전한 사도 바울로 변화시킨 예수님을 통해 우리들도 변화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주신 본문에서는 변화된 사도 바울의 믿음의 근거와 믿음의 방향을 잘 소개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소개받는 우리들은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본받아 우리들도 확고한 믿음의 근거와 믿음의 방향을 확인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뜻을 이해하고 본문이 주는 교훈을 찾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는지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부끄러움이 없는 바울의 사도직(1-2) [2]복음의 빛을 밭는 자와 빛이 가리운 자(3-4) [3]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5-6)입니다.

 

[1] 맨 먼저 1절과 2절의 부끄러움이 없는 바울의 사도직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들은 사도 바울이 사도로 불리움을 받고 일생을 복음 전도자로 일해나가는 동안 그가 얼마나 어려운 고난을 많이 당했는지 성경에 기록된 자신의 고백을 통해 잘 알고 있습니다. 고린도 후서 11:23-28 에 보면 자신이 소개하기를 수고를 넘치도록 하였다고 했으며 많이 매맞고, 많이 갇히고, 많은 위험을 만나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고, 여러 번 자지 못했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또 그가 남들에게는 이적적인 사간을 통해 많은 병을 치료해주었으나 자신에게 있던 병은 하나님께 간구했으나 치유를 받지 못하므로 이것 때문에도 고통을 겪었을 것입니다. 그가 이런 당할 수 없는 모든 고난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부끄러움이 없는 사도의 직분을 감당한 자신의 믿음의 뿌리를 1절에서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 뿌리란 자신이 예수님께 붙잡히기 전에는 기독교인들을 심히 핍박했던 죄인중 괴수였는데 자신을 주님의 사도로 택하셨다는 은혜입니다. 즉 모세를 통해 선포된 죽음에 이르게 하고 정죄에 이르게 했던 율법보다도 더 영광스럽고 더 우월한 생명의 법, 의의 법을 선포하는 영광된 직분을 수행하도록 긍휼을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가 바로 흔들릴 수 없는 뿌리가 된 것입니다. 율법에 의해 죽을 수밖에 없었던 우리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새 언약의 법, 의의 법, 생명의 법인 복음을 내려주심으로 영원히 살 수 있게 해주신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의 참뜻을 알고 있다고 한다면 우리들의 신앙의 뿌리가 역시 흔들릴 수 없으리라 봅니다.

 

사도 바울은 그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아무리 참기 어려운 어려움에도 복음 전도를 포기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고난 때문에 받은 바의 진리를 세상과 타협하여 고쳐나가지 않았음을 2절에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가 복음을 전할 때에 남이 알면 부끄러울 만한 일을 한 일이 없으며, 복음을 자기의 명예나, 물질의 이익 때문에 전하지 않았으며 어떤 경우에도 순수한 복음에 사람의 생각을 보태거나 빼므로 복음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받은 진리 그대로를 전달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실을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주실 뿐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양심도 그를 증거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정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복음 전도자였음을 알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강조하고 있는 이유가 어디에 있을까요? 그런데도 고린도 교인들중 어떤 사람들은 거짓 선지자의 충동에 넘어가 사도 바울은 입에 풀칠하려고 복음을 전한다거나, 비 정통적인 진리를 전한다거나, 가짜 사도라고 사도 바울을 넘어뜨리려고 지나치게 비난했었기 때문인 것입니다.

 

[2] 두 번째로 3절로 4절까지의 복음의 빛을 받은 자와 빛이 가리운 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앞에서 말한 대로 자기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감사하여 자기의 모든 것을 희생해가면서 죽어 가는 영혼 하나 하나를 살리기 위해 복음을 전했을 뿐 아니라 고난에도 굽히지 아니하고 진리를 전달받은 그대로 전했는데 그런 존경받을만한 일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하고 오히려 사도 바울을 악한 자로 몰아세우는 자들이 있었으므로 이런 자들을 두고 ‘우리의 복음이 가리운 자’라 또는 ‘망한 자’라 3절에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빛이요, 그의 영광은 광채로 나타나게 되므로 그리스도의 진리가 전파되면 어두움에 있는 자들 누구에게나 빛이 다 비취이게 되어 다 그 빛을 볼 수 있었음에도 고린도 교회의 악을 선동하는 자들과 같이 어떤 자들은 그 영광의 빛을 받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탄이 고집이 세고 교만한 어떤 자들의 마음에 혼동을 주어 그리스도를 불신케 하기 때문이며 이런 결과로 사단이 그리스도의 빛을 가로막아 그들에게 빛이 비치우지 못하게 하는 결과가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의 희생적인 참모습을 어떻게든지 악한 자의 모습으로 보이도록 선동자 마귀가 사도 바울을 늘 따라다녔다는 사실을 보면서 사탄이란 얼마나 사악한 존재인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됩니다. 그 사실을 아는 우리들은 이 사실을 늘 염두에 두고 행여나 사탄의 유혹에 빠지지 않도록 할 뿐 아니라 사도 바울과 같이 이런 사탄에게 지지 아니하고 끝까지 싸워 이긴 자들이 되어야 하겠다는 교훈을 받게 됩니다.

 

[3] 세 번째는 5절로 6절의 바울이 전한 복음의 내용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인해 자기가 어두움에서 밝은 데로 옮기어졌으며, 이 빛을 통해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에게 내리신 영광을 깨닫게 되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 전도자가 전할 것은 오직 빛되신 그리스도가 바로 우리의 주가 되신다는 사실과 우리들은 바로 주되신 그리스도의 종들인 사실을 전파할 뿐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바울의 반대파들이 사도 바울은 자신만을 자랑한다는 비판에 대한 답변도 되겠으며, 또한 진리를 세상 조류에 따라 이렇게 저렇게 복음을 손질하며 복음을 자기 생활에 편리한대로 이용하는 자들에게 무엇을 전해야 할지의 방향을 제시해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오늘 이 세상에 있는 많은 교회의 강단에서는 어떤 메시지가 전달되고 있을까요? 아니 예배당에 모여든 많은 사람들은 강단에서 어떤 메시지가 나오기를 요청하고 있을까요? 설교자나 청중들의 욕구가 무엇일지 모르나 오늘 본문에서는 과연 전하는 자들이 주의 종이라면 마땅히 오직 빛되신 예수 그리스도만을 전해서 어두움에 처한 자들이 빛으로 나아와 주님 오실 때에 주님께서 주실 영광에 동참키를 원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들은 오늘 주신 본문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받았으며 이 교훈을 우리들의 일상 생활에 어떻게 적용할 수 있겠습니까?

 

사도 바울의 신앙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배운 사도 바울의 삶은 무엇이었습니까? 말씀에 따라 산 삶입니다. 사도 바울은 율법을 따라 살았었지만 그리스도를 만나 그리스도가 주신 새 언약을 전달받고 변화되어 일평생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았습니다. 우리들도 일평생 우리가 마음을 담고 살아가야 할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받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의 귀와 눈과 마음을 만족케 할만한 말씀이 우리를 부르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직 주님이 주신 말씀만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들은 우리들이 갖고 있는 성경을 읽고 들음으로 주님으로부터 말씀을 직접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들은 주님이 주신 말씀에 따라 변화된 삶을 살므로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믿음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말씀대로 살려고할 때에 빛을 가로막는 사단의 세력이 방해를 놓을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방해가 우리를 가로막더라도 우리는 그런 시험을 성령의 도움을 받아 이겨내야 합니다. 양심에 부끄러울 것이 없는 삶이란 성경 말씀에 맞추어 내 생활을 고쳐나가는 변화된 삶을 사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 생활에 맞게 성경을 고쳐나가는 삶은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불순종의 삶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리들은 사람들의 인기를 중심한 삶을 살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성도들은 사람의 인기보다 하나님의 인기를 중심 하는 삶을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눈보다 사람의 눈을 중심한 삶은 죽는 삶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은 우리들에게 영원한 삶과 영광을 가져다 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의롭게 살고자 하는 자에게는 대중의 인기가 있을 수 없으며 오히려 핍박과 비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러나 그런 핍박이나 비난을 의식해서는 아니됩니다. 죽을 수 밖에 없던 우리를 영생에 이르도록 독생자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하신 긍휼과 은혜를 생각하면 우리들은 심한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바라시는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께도 고난의 십자가 뒤에 부활의 영광이 있었으며 사도 바울의 많은 고난 후에 영광이 주어짐 같이 고난을 받으나 넉넉히 믿음으로 이겨나가는 우리 모든 성도님들께 큰상으로 갚아주실 것입니다. 아기 예수로 오신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에 따라 변화된 삶으로 크리스마스를 장식해야 합니다. 이런 삶을 사는 자만이 메리 크리스마스를 말할 자격이 있습니다. 자기 욕심대로 삶을 사는 자나 말씀을 자기 생각대로 뜯어고치며 사는 사람들은 크리스마스에 등장할 가치가 없는 존재들임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크리스마스 트리나 성대한 성탄절 행사가 주님을 즐겁게 해드리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대로 믿음 생활을 지속하여 예비하신 상과 영광을 다 차지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