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 – 마태복음 3:13-17

오늘 설교 제목은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심입니다. 세례 요한의 인기가 절정에 오를 때 예수님께서 갈릴리의 나사렛이란 곳에서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베푸는 요단강에까지 오시어 세례 요한에 의해 세례를 받으시는 사건을 통해 우리레게 주는 교훈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본문 13절부터 17절까지를 4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내용을 먼저 이해하고 본문이 우리레게 주는 교훈을 찾아 우리 생활에 적용하도록 하려고 합니다.

 

[1]예수님의 세례 요청(13절)

[2]세례 요한의 반응(14절)

[3]세례의 목적과 의의(15절)

[4]세례 받으실 때 나타난 기이한 일(16-17절)

 

[1]예수님의 세례 요청(13절)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내용을 조금씩 차이는 있으나 4복음서에서 다 다루고 있는 사건입니다. 13절에 보면 이때에 막 그때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오셨고 세례를 받으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이때나 그때란 사복음서를 찾아보면 세례 요한이 인기가 대단해서 백성들이 다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는 때를 말합니다. 세리들도, 군병들도, 종교 지도자들도 한ㄴㄴ결같이 몰려와 죄를 자복하고,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던 때로 세례 요한이 인기가 대단한 때인 것 같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니 그 때는 주님이 30세쯤 되신 때라고 누가는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그럼 세례 요한은 몇 살이 되겠습니까? 역시 30세쯤 되겠지요? 본문은 그 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이란 곳에서 요단강까지 도보로 와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 받으러 오셨다는 것입니다.

 

[2]세례 요한의 반응(14절)

보통 사람이라면 자기가 크게 성공하거나 인기가 절정에 이르게 되면 교만하게 되기 마련인데, 모든 백성들이 다 나와 세례를 받게되는 인기 절정기를 맞고 있었던 세례 요한은 세례 받으시겠다는 예수님을 향해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라고 말씀드리고 세례 받으시겠다는 요구를 말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세례 요한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자기보다 큰 자요, 또 그는 성령과 불로서 세례를 줄자이므로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통해 오히려 구원의 세례를 받을 필요가 있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세례 요한의 겸손에 대해 강조했지만, 백성들이 몰려와 있는 공공 장소에서 공개적으로 이런 고백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끝까지 하나님의 부르신 목적을 잘 알고 부르신 그대로 잘 사역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겸손하고 착하며 충성된 종이라 칭함을 받을 만 합니다.

 

[3]세례의 목적과 의의(15절)

세례 요한이 말렸으나 예수님은 “이제 허락하라,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고 말씀하시자 세례 요한이 허락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례 요한의 세례는 무슨 세례라고 했지요? 회개의 세례, 세례 요한은 모든 백성들이 회개하여 주님 맞을 준비를 하게 하는 주님이 오실 길을 닦는 일인데, 회개할 죄가 없으신 주님의 말씀이 “허락하라, 이렇게 하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라” 말함으로 세례 요한이 그의 요구를 허락한 것입니다. 회개할 죄가 없으신 주님께서 왜 회개의 세례인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는지? 궁금하지 않으셨습니까? 또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신 일이 어떻게 모든 의를 이루는 일이 되는 것인지 긍금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세례 받으실 필요가 없는 분이 세례를 받으셨다면 큰 의미가 틀림없이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주님이 받으신 세례” “모든 의를 이루는 일”에 대해 묵상하면서 그 큰 의미를 깨닫고 하나님께 많이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자기는 결혼해서 부인과 함께 전도 여행을 다니고, 또 각 교회에서 마땅히 사례들을 받을 권리를 사양한다고 자기의 신앙 표현을 했고, 자기가 고기를 먹는 일이 믿음 약한 자에게 불이익을 준다면 자기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말하므로 이웃의 유익을 위해 자기가 누릴 수 있는 권리를 사양한다고 했는데 주님은 자기가 세례 받으므로 많은 유익을 가져다주게 될 터이므로 그렇다면 받아야할 의무는 없지만 세례를 받으시겠다고 하니 “권리와 의무를 행사하는 차원 높은 모범을 발견하게 됩니다.

“모든 의를 이룬다는” 세례 받으신 목적을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눅 7:29-30에 보면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하되 오직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은 그 세례를 받지 아니한 자라 스스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 라고 기록되므로 세례 받지 않는 자는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는 것이라 했으니 세례 받는 일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이 된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살아 계실 동안은 율법시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8일만에 할례를 받으셨고, 유월절도 지켰고, 성전세를 내신 것입니다.

율법시대에 사는 모든 사람은 율법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것이므로 눅3:21에 보면 “백성이 다 세례를 받을새 예수도 세례를 받으시고” 라고 표현되듯 인간의 몸을 입으신 예수님도 철저하게 모든 죄인된 인간들 같이 행하므로 육신의 몸을 입으셨다는 의미가 철저히 들어나는 것입니다. 인간 예수는 다른 인간들과 같이 세례 받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둘째, 죄 없으시지만 만민의 죄를 위해 앞으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장사지내게 될 것에 대한 하나의 모형으로서 죄 없으시지만 죄 있어 물 속에 장사되므로 그의 죽음에 대한 예표, 상징, 모형이 되는 것입니다.

셋째, 요한복음 1:31에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주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게 나타내려 함이니라”고 함같이 예수님의 세례 받으심으로 세례 요한을 통해 나사렛에서 오신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요, 앞으로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어린양이심이 공개적으로 선포됨으로 주님의 공생애가 시작할 수 있는 인간 사회의 임직식의 선포가 된 셈입니다.

넷째 본문 16-17절에 나오지만 주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을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렸고,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므로 나사렛 예수가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해 메시야 임이 선포될 뿐 아니라 하나님을 통해서도 많은 사람 앞에 하나님의 아들이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메시야임이 선포되므로 메시야의 공생애를 시작하는 하나님이 베푸신 안수를 받으신 결과가 된 것입니다,

다섯째, 모든 인류가 구원의 세례를 다 받아야 하는데 주님께서 세례 받으심으로 모범을 보에 주셨고, 세례가 필요 없다는 이론과 학설의 입을 다물게 하는 강한 설교를 주신 결과가 된 것입니다.

 

[4]세례 받으실 때 나타난 기이한 일(16-17절)

세례 받으시고 졷 물에서 올라오시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았는데 또 하늘에서 소리가 있기를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요한복음 1:33-34에 보면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일러주기를 “누구에게든지 성령이 내려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바로 성령으로 세례를 주는 이인 줄 알라” 하였는데 이런 현상이 바로 나사렛 예수레게 나타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즉 이런 현상은 하나님의 예정이요, 계획이었으며, 예수님이 바로 메시야이심을 인정해 주는 증명서이기도 한 것입니다. 요한의 입을 통해 증거되고 하나님의 입을 통해 인정되는 인정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젠 일할 시기가 되었다는 파송식을 한 셈입니다.

“하늘이 열렸다는”것은 구름이 걷히었다는 뜻도 되고, 하나님께서 직접 내리셨다는 뜻이 되겠습니다.

마17:5절에 보면 예수님이 변화하셨던 변화 산상에서도 “구름이 저희를 덮으며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소리가 들려 주님이 바로 메시야이심이 선포된 같은 류의 기이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본문에서는 구름이 걷혔다고 보고, 마17:5에서는 구름이 저희를 덮었고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났다고 했으니 구름이 열리나 덮여도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성령과 소리가 나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본문은 하나님, 아들, 성령, 성삼위가 언급된 최초의 기록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 예수님이 받으신 세례를 통해 무슨 교훈은 받으며, 우리 생활에 무엇을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오늘의 교훈은 모든 의를 이루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과 자신을 합해 우리라고 표현했습니다. 자신들의 행동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자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행동 즉 하고, 하지 않고 하는 모든 일이 하나임의 의를 이루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 감정, 내 욕심 채우는 일로 그쳐서는 아니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가고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히 순종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모든 의란” 하나님의 의요 사람끼리 좋은 것이 좋다고 타협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체면, 고집, 친구와의 약속에는 어긋나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길리 바로 “모든 의를 이루는 우리의 행동”이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결정한 것이 지금 내가 하기로 한 것이 내가 지금하지 않기로 한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것입니다. 내 의를 이루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이루는 목적으로 내가 먹든지 안 먹든지, 하던지 하지 않던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 나기는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을 가지고 설교 준비를 하느라 몇 권의 책을 보면서 신학이나 교파의 전통이 얼마나 하나님의 뜻을 가리우는가를 다시 깨닫게 되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주님마저 세례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 오셨다는 기록이 나옵니다. 주님께서 침례를 받으신 것입니다. 주님은 물 속에 잠기셨다가 놀라 오심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원상으로나 형태로나 교회 역사적으로 초기 교회들의 세례는 침례입니다. 요단강이라는 강은 그런 의미에서 있습니다. 많은 물이란 이런 의미에 있습니다. “그릇”이란 물방울을 연상케 하지만 요단강이란 롬6:3-4의 물로 장사지내고 다시 부활한다는 상징을 충분히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학자 중에는 물에서 올라 왔다는 말은 꼭 침례를 받았다고 말할 수는 없으며, 침례를 꼭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다 침례이든 약식이든 회개하는 마음이 중요하다고 성경을 그대로 풀어 보려는데 크게 인색함을 보게 됩니다. 그 당시에 요단강에 침례가 아니면 물그릇을 가지고 물을 떠서 손으로 묻혀 물방울을 뿌렸다고 본다는 것입니까? 그런 교파적이요, 인위적이요, 신학적인 가르침에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진리를 굽게 해서는 안됩니다. 굽게 말하는 자들에 귀를 빌려줘서는 안됩니다. 성경에 있는 것은 옳고, 성경에 없는 것은 없다고 정직하게 말할 수 있는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매주마다 주의 만찬을 하는 것이 성서적이라면 인간들의 많은 의견과 신학 사상과 자기 고집을 버리고 매주 만찬은 행한 것이 바로 순종이요, 순종이 바로 모든 의를 이루는 방편이 됩니다. 세례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일에 주님과 동역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므로 모든 의를 이루고 주님과의 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순종할 때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이 들릴 것입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너는 내 기뻐하신 자다” 순종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이요, 하늘 문을 여는 열쇠요, 하나님의 인정을 받는 증거가 되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이 순수한 주님의 말씀을 새롭게 접하고, 말씀대로 순종하여 하나님의 모든 의를 이루시는 주님의 참된 동역자들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