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하지 말라 – 마태복음 6:25-34

오늘 제가 붙인 설교 제목은 “염려하지 말라”입니다. 본문 25-34절까지에서 “염려하지 말라”라는 명령이 25절, 31절, 34절에 3번이나 반복되어 있어 그런 제목을 정한 것입니다.

사람이란 근심, 걱정, 염려를 먹고사는 존재가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근심, 걱정, 염려란 끝이 있는 것이 아니고, 생활 속에서 늘 생겨나기 때문에 죽을 때까지 삶과 늘 동거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세상에 근심, 걱정 없는 사람 있을까요? 아이들은 제외하고는 그 누구도 예의가 없이 크고, 작은 염려, 근심, 걱정이 있으리라 봅니다. 돈이 없어도 염려, 돈이 많아도 염려, 차가 너무 나빠도, 좋아도 염려, 아브라함은 자기 부인이 너무 예뻐서 염려했던 사실을 창세기에서 배웠지요? 인간이란 걱정거리가 없으면 스스로 걱정을 만들어서 걱정하며 하는 존재임이 틀림없다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는 본문에서 3번이나 강조하며 염려를 하지 말라고 충고하고 계십니다.

본문을 5부분으로 나누어서 주님이 우리에게 주고자하는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겠습니다.

 

[1]걱정하지 말아야 할 것

25절, 31절, 34절에서 염려하지 말 것에 대해 가르치고 있는데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먹고, 입는 것이란 인간 생활에서 기초적이요, 필수적인 것이며, 이것은 세상 물질 세계를 대표하는 것들이라 하겠습니다. 달리 말한다면 세상일을 염려하지 말라는 말인데, 이 말이 인생의 계획을 세우지 말라는 말이 아니며, 먹고사는 문제는 전연 궁리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 아니며, 태만하거나 무책임하란 말도 아니고, 수고할 필요가 없다는 말은 아닙니다. 아담과 하와의 범죄로 인간은 수고와 땀을 투자하여 먹고살게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기 책임을 다해야하고 먹고살기 위해 일을 해야 하며 남을 구제하기 위해 over time이라도 해야 할지 모릅니다.

주님의 말씀은 사치스런 인생, 비싼 집, 비싼 옷과, 비싼 보석들은 소유하려는 욕심에 그런 함정에 빠지지 말라는 것이며, 지나치게 염려하여 잠 못이루고, 혈압 오르고, 머리 아프고, 기쁨을 잃고, 때로는 쓰러지게 하는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더 많은 물질을 얻기 위해, 더 안전한 삶을 살기 위해, 하나님을 덜 생각하고 하나님 중심한 시간이 줄어들고 결과적으로 믿음이 떨어지게 되는 그런 세상 염려를 하지 말라는 것이며, 세상일만 생각하고, 세상 저 너머의 세계에 대해서는 생각할 겨를도 없는 세상 사랑과 세상 염려를 하지 말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고, 세상에 빠지고, 세상이 나를 바쁘게 만들고, 세상이 나를 지배하고, 세상에 구속되어 하나님을 찾는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하게 되는 그런 지경이 되지 말라는 것입니다. 더더욱 내일 일, 미래의 일까지, 뒤에 일어날 일까지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일 져야할 짐은 내일 지고, 오늘은 오늘 하루의 짐만 지고 가라는 교훈입니다.

 

[2]염려의 어리석음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하고 있는 염려가 무가치하고, 어리석음을 지적하고 계십니다. 염려에서 이뤄질 수 있다면 좋으려니와 아무리 염려한다고 키가 1센티가 더 커질 수 있다거나, 염려한다고 1분이라도 수명이 길어질 수 없으니, 염려는 쓸모 없는 것이라는 말씀이며, 염려하지 않을 것을 염려한다고 새와 백합화의 예를 들어 책망하시게 됩니다.

새는 심거나 거두거나 또 창고에 거두어들이는 일이 없어도 그들이 먹을 것을 먹고살도록 하나님이 예비하신다는 것이며, 들의 백합화가 아름다운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옷을 입기 위해 실을 감고 물을 드리며 제단하고 꿰매는 수고를 전연 하지 않아도 세상에서 제일 사치스러웠다는 솔로몬 왕이 입었던 옷보다 더 좋은 옷을 하나님이 입히셨다는 사실입니다. 새와 들풀보다 너희가 더 중요하지 않느냐고 질책하십니다. 새나 들풀도 이렇게 먹이시고 입히시는데 하물며 사랑하는 인간들에게는 더욱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는 말씀입니다. 들풀도 새도 염려하지 않아도 먹고 입고 사는데, 고등 동물인 인간들이 먹고 입고하는 세상일에 염려하고 고민에 빠져 있느냐, 그 이상의 것을 구하라, 차원 높은 것을 구하라는 말씀입니다. 여기서도 인간이 아무런 수고도 아니 해도, 길쌈도 아니 해도, 옷을 입혀주시고 먹여 주신다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인간이 최선을 다해 노력하므로 입는 것, 먹는 것은 다 해결이 가능하나 꼭 필요한 그 이상의 양을 얻어내려고, 육신적으로 정신적으로 무리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입니다. 인간이 실지로 필요 하는 주 필수품이란 하나님께서 아시고 다 공급해 주실 것이므로 그런 것을 염려하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3]이방인들이 구하는 것

이방인들이란 누구일까요?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 하나님이 나라에 대해 모르는 자들, 즉 미래의 소망이 없는 자들, 오로지 이 세상이 전부인 자들, 그러므로 천국이 소망이 없는 자들이므로 이 세상이 그들 삶의 전부인고로 이방인들은 보다 더 사치스런 옷을 입고, 사치스런 자동차들 타고, 명예를 자랑하고, 권세를 휘두르며, 세상적인 것으로 영광을 삼고, 사는 생활을 하게 될 것입니다. 오로지 그런 점을 얻으려 밤낮 일하고, 밤낮 염려하며, 그것 얻으려 이웃과 투쟁하고, 얻는 것 실패하면 혈압이 오르고, 두통이 생기고 불안하고 허둥지둥하며 안전을 잃게 되는 무리들이 바로 이방인들입니다. 또 이들은 사람을 평가할 때, 성공과 실패를 판단할 때, 세상적인 것만 가지고, 평가하게 되고, 있는 자는 존경하고, 없는 자는 무시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비싼 보석을 손에, 목에 걸고 다니는 여자, 비싼 유명 상표의 옷 입은 여자 보면, 야! 세련되었다, 부럽다, 나는 왜 저렇게 못사나하고 그걸 보고 실망하고, 맥이 빠지고, 또 값싸고 철이 지난 옷 입고 다니는 사람 보면 촌티가 난다고 중얼거리거나 무시한 눈으로 보는 자들이 바로 이방인들이 되는 것입니다. 소망이 있고, 약속이 있는 신자들은 생활태도, 사고방식이 이방인과 달라야 한다는 말입니다.

 

[4]믿음이 적은 자들아!

주님은 믿음이 적은 자들이라고 책망하십니다. 이방인들에게 책망하신 것일까?요 믿는 자들에게 책망하신 것일까요?

믿는 자들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왜죠? 믿는 자들이 이방인들과 생각하는 것, 인생의 목표, 인생철학이 똑 같으니 책망하신 것이지요. 아침에 눈을 떠도 세상 걱정만 하고 1월 1일에도 12월 31일에도 세상 걱정만 하고, 부자만 보아도 나는 뭐야 하고, 머리 아파하니 책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지요. 교회에서도 부자는 대우받고 가난한 자는 천대받게 되고, 신자도 권리 있고 지위 있으면 교만해지고, 그런 것 없으면 스스로 비천하게 생각되니 책망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이란 책망은 믿음을 키우라는 말입니다. 가치관을 바꾸라는 말입니다. 우선 순위를 바꾸라는 말입니다.

배고플 때 숟가락이 먼저 손에 잡히던가요? 하나님께 감사 기도가 먼저 있게 되던가요? 세상 비디오와 성경 비디오 중 무엇이 먼저 보아지던가요? 비싼 옷 입은 자와 믿음 좋은 사람 중에 누가 더 부럽던가요? 가난한 사람과 부자를 대할 때 구별이 되던가요? 같이 대해지던가요? 권력이 있는 자와, 비천한 자를 대할 때 같이 대해지던가요? 나도 모르게 구별이 되던가요?

세상 것이 내 눈에 크게 보이고, 하늘나라의 일이 내 눈에 적게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다면 믿음이 적은 자들이므로 믿음이 키워야 합니다. 세상에서 실패했을 때 완전좌절이 되던가요? 하늘나라의 소망과 새 하늘과 새 땅의 약속을 믿고 다시 힘을 얻어 위로가 오던가요? 세상 것에 늘 내 생각과 염려를 두고, 믿음 생활에 관심이 덜하거나 관심이 없다면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머리에 떠오르는 것은 늘 마음의 단장과 자기 신앙 문제보다 세상문제와 몸치장이라면 반성하고 믿음을 키워야 합니다.

 

[5]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먹고 입는 것에 대해서 전연 관심도 갖지 말라는 것 아닙니다. 그것을 위해 일하고 움직이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다만 그것만을 위해 뛰지 말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의 우선 순위가 되어서는 아니 되고, 마땅히 나의 우선 순위는 내 믿음, 내 영적 생활, 미래의 천국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다고 느껴진 우리 모두는 내 기도의 능력을 위해 기도하고, 말씀의 이해와 충만 위해 기도하고, 성령이 나를 다스려 내가 지금 늘 평안한 천국 생활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영적인 내가 육적인 나를 이기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돈보다, 세상보다, 믿음을 앞세워 세상보다 주님을 앞세우는 믿음가지라는 것입니다. 하늘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주님 먼저 믿음 먼저의 생활을 시작한다면, 우리가 세상에서 필요한 것을 하나님께서 알으시고 다 공급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물론 필요 없는 것은 주시지 않고요.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라” 라는 제목은 산상설교의 주제라고도 할 수 있는 아주 중요한 주제라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이 큰 자, 작은 자를 재는 잣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난하여 돈이 모자란 사람이 주일에 일을 하러 가야할지, 교회를 가야할지를 가르쳐 주는 교훈이기도 합니다. 사업을 새로 시작해서 손님을 끌어 모으고, 빚도 갚아야 하는데 주일에 문을 열어야 할지 문을 닫아야 할지를 가르쳐 주는 답이기도 합니다.

세상 것은 내가 최선을 다하고, 나머지는 하나님께 맡길 수 있는 위대한 믿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내 생명도, 내 사업도 주인은 하나님이신데, 왜 종업원인 내가 아버지 Business 걱정 때문에 교회도 안가고 Business를 open해야 합니까? 가게 운영은 주인이신 아버지께 맡기고, 나는 일하는 시간에 충성을 다하면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적은 자들이 되어 아버지께서 하실 일까지 내가 결정하고 짐을 지려는 어리석은 자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자녀,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자들에게 먹고 입고 세상에서 필요한 것 다 아시고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믿는 자라고 부릅니다. 즉 믿음을 가지고 있는 자들입니다. 무엇을 믿고 있는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말씀, 주님의 약속을 믿는 자들인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즉 예수를 믿으면 잘먹고 잘살 것을 믿고 바라며, 새벽예배부터 시작하여 수요집회를 주일을 잘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열심히 신앙 생활하는 이유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고, 우리에게는 현재의 천국과 미래의 천국의 약속이 있는 자들이기 때문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의 목표가 세상에서의 성공이 아니라, 주님 오실 때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사는 것인 것으로 분명해져야 할 것입니다.

 

그런 소망, 그런 목표, 그런 약속을 가진 자들이라면 이 세상의 어떤 것 때문에 염려하고 걱정하고 좌절당하는 세상 것을 얻으려 세상에 빠져서 믿음을 게을리 하거나 믿음을 버리게 되는 어리석은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된다는 교훈입니다.

 

세상 사치 못해서 세상 것 못 가져서 실망하는 믿음 적은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상 것에만 눈이 앞서는 믿음, 적은 자들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습니다. 세상 것은 낡고 없어지며, 실망을 가져다 줄 때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을 키워서 내 인생을 바꿔 놓아야 하겠습니다. 내 생활이 주님 먼저, 말씀 먼저, 기도 먼저, 찬양 먼저, 교회 먼저, 사랑 먼저, 남용서 먼저, 봉사 먼저, 남 대접 먼저, 회개 먼저의 생활인 그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믿음이 있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백합화와 같은 아름다운 옷을 만들어낼 수 없는 무능한 자가 염려하고 걱정한다고 백합화가 땅에 떨어지겠습니까? 하나님께 맡겨야지요? 내가할 수 없는 내일 일도, 모래 일도, 내년 일도, 내 생활에 대한 근심 걱정 모든 것을 하나님께 다 맡기고 내 일생생활에 최선을 다하고, 그 다음은 하나님께 다 맡기되 내 삶의 목적과 삶의 우선 순위는 천국과 믿음생활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세상 것은 우리 속 사람에게 만족을 가져다 줄 수 없습니다. 속 사람은 세상을 믿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속 사람은 믿음으로 영으로 사는 존재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이를 믿으시는 성도가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