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일군 – 마태복음 9:35-38

오늘 설교제목은 ‘추수할 일군’입니다. 오늘 설교제목에 따라 농촌의 환경과 실정을 회상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우리 교인들 대부분이 농사에 실경험이 없으시리라 생각되어지는데, 저는 3년간 농촌에서 생활해 본 경험이 있어서 농촌 사정을 많이 이해하고 있는 편입니다. 농촌이 아름다운 곳이나 오늘 설교 제목대로 일할 일군, 즉 손이 모자라 쩔쩔매는 곳임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모를 심게되면 집집마다 모심는 날을 다르게 잡고, 그 schedule에 따라 남의 집 모를 심어주고, 또 그들의 손을 빌려 우리 집 모를 심어나가는 협동의 방식으로 일을 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즉 농촌은 손이 모자란 곳, 정말 일군이 필요한 곳입니다. 그런 이유로 옛 우리 어머니들이 아이를 낳자마자, 밭에 논에 나가 일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실정이었습니다. 비가 오지 않으면 모를 심지 못하고 기다리다 보면 시기가 늦어져 하루가 급한데, 모처럼 비가 왔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집집마다 당장 모를 심어야할 형편이니 얼마나 일군이 필요하겠습니까? 또 곡식을 거두어 드리고 있는데, 빗방울이 든다고 가정해 보십시오. 일손이 필요하나 구할 수가 없는 곳이 바로 농촌입니다.

저는 짧게나마 농사의 일을 경험해서 조금은 알고 있는데, 주님께서는 농사의 경험이 없으신 데도 아버지가 주신 지혜로 농사 일, 즉 추수하는 비유를 들어 오늘 우리에게 교훈을 주시게 됩니다. 말씀마다 주님의 간절하신 그 마음을 이해하고 감동을 받게 되는데, 오늘 말씀 준비를 하면서 추수할 일군이 없어서 안타까워하시며, 보다 많은 추수할 일군을 찾고 계시는 주님의 마음을 읽게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우리 모든 성도들이 나이가 적거나, 많거나, 여자이거나, 남자이거나 주님의 마음을 읽고, 그가 바라는, 그가 찾고 있는 일군이 되어 주님과 함께 아버지의 바라시는 일을 하는 일군들이 되시기 기원합니다.

 

본문을 3부분으로 나누어 본문의 내용을 이해하고 본문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받고 우리 생활에 적용하도록 하겠습니다.

 

[1]주님의 사역(35)

[2]주님의 동정심(36)

[3]일군을 찾으시는 주님(37-38)

 

[1]주님의 사역(35)

주님께서 지금까지는 혼자 일을 하셨다고 말한다면 오늘 본문부터는 제자들을 양육하시어 함께 일하시는 사역이 시작되며, 갈릴리의 가버나움을 중심해서 더 넓은 지역으로 전도의 문이 넓어지게 됨을 보게 됩니다.

35절에 주님의 사역의 방법, 장소, 그가 하신 일을 아주 잘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사역의 방법은 나가서 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마 28:19-20에 “너희는 가라, 너희는 제자를 삼아라, 제자들을 가르치라”고 위대한 사명을 주셨는데, 본문에서는 주님 자신이 그것을 실천하신 것입니다. 물론 찾아오는 무리들도 가르치, 병을 고쳐 주었지만, 오는 사람 기다리지만 않고 전파하기 위해서 두루 다니셨음을 보게됩니다.

사역의 장소로 그는 모든 성과 촌에 두루 다니셨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모든 성과 촌이란 말을 우리의 환경으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어디든지, 도시든, 시골이든 산과 들, 바닷가, 비행기, 배, 묘지, 집, 학교 상관없이 기회 있을 때 마다라고 해석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남북 통일이 되면 가서 전하려고 그 때를 기다리며 쉬고 있는 것도 아니고, 시골은 가고 싶지 않으니 도시에 좋은 자리가 나면 거기서 전하려고 때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며, 청중이 많이 모이는 큰 집회에서만 전하는 것이 아니며, 적은 수라도 기회 될 때마다 전한다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역의 내용은 가르치심, 전도, 병 고침, 이 세 가지를 병행하셨음을 보게 됩니다. 천국의 좋은 소식, 복된 소식, 복음인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전하고, 그들을 더 구체적으로 가르치며, 또 병든 자를 고쳐 주신 일을 했습니다. 주님께서는 어디든 찾아가시어 만나는 사람에 복된 구원의 소식을 전하고, 가르치시며, 필요한 자에게 육적 욕구를 채워 주신 것입니다.

 

[2]주님의 동정심(36)

36절에 보니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고 유리함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꿰뚫어 보시는 통찰력을 가지고 보시니 세상 사람들이 불쌍하다고 진단하신 것입니다.

고생하는 삶을 보신 것입니다. 육적으로 퍽 고달픈 인생을 살고, 정신적으로 안정이 없는 고통스런 삶을 살고, 종교적으로 메말라 있는 삶을 살고 있음을 보고 불쌍하게 생각하신 것입니다. 신자나 불신자나 할 것 없이 모두 구제 받아야 할 요구호 대상자임을 보게 된 것입니다. 가난하거나 육적 고통 때문에 고생하고 있음을 보셨고, 돈이 많고 사회적으로 안정되게 보여도 그 마음속에 허전한 공허감이 꽉 차있고, 맥이 빠져 있어 어떤 의욕이 없으며 죽음에 대한 불안 공포가 있으며, 인생에 대한 어떤 가치관이 없어 하루하루를 무의미하게 살아나가는 모습을 발견하셨다는 것입니다.

목자 없이 헤매는 무리들을 보신 것입니다. 바른 지도자가 있어서 그를 따르면 살길이 있을 터인데 목자 없는 양같이 어디로 가야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철학도, 종교도 그 길을 제시해 주지 못함을 보신 것입니다. 종교인도, 비종교인도 인생의 마지막은 패망인 것을 보신 주님께서 얼마나 안타까우셨겠습니까? 종교에서 해답을 얻으려고 종교에 들어 와보니, 오히려 잘못된 종교적 전통과 현실이 종교를 찾는 자들의 마음을 편케 하거나 안식처가 못되고, 세상 밖이나 종교 안이나 차이가 없게되므로 종교 안에의 무의미함을 보시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찾으러 하나님 만나러 교회를 찾아놨는데 교회에서는 하나님 만나게 해 주지 못하고 냄새나는 사람 꼴만 보게 해 주었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새로 태어나기를 바라는 심령에게 잘 지도를 해 줄 수 없는 그 당시 유대교 지도자들의 실상을 보시고 답답해하신 것입니다.

 

[3]일군을 찾으시는 주님(37-38)

사람들 눈으로 본다면 가난하고, 병들고, 낙망하여 실의에 빠져있고, 인생을 어느 길로 가야할지 방황하며, 술 취하고, 마약하며, 도박에 정신을 못 차린 사람, 가정 파탄과 사회 밑바닥 어두운 곳을 헤매는 사람들을 볼 때, 그런 사회와 나는 아무 상관도 없고 오히려 그런 속에서 빠져 나와 나만 홀로 다른 곳에 우뚝 서서 살기를 바라고, 그들을 버린 사람들로 눈 밖으로 내 팽개칠지 모르나, 주님의 눈은 그들을 버릴 것으로 보지 아니하고 그들을 오히려 찾고 지켜야할 것으로 보신 것입니다. 그가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전해, 버릴 돌들을 변하게 하여 집 지을 때 긴요하게 사용되는 주춧돌, 벽돌들이 되게 하는 것으로 생각하신 것입니다.

바다 고기들이 많이 몰려있는 곳을 뭐라고 부르지요? 황금어장이라 부릅니다. 주님의 눈으로 보실 때는 꼭 예수를 알아야할 꼭 돌이켜야할 대상자들이 세상에 가득 차 있음을 보신 것입니다. 세상을 황금어장으로 보셨다는 것입니다. 가난하지요, 병들었지요, 마음 아파하지요, 가정 파탄되어 있지요, 술주정 하지요, 인생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도 모르지요, 내 주변에 있는 많은 사람들이 모두 실의에 가득 차 있음을 볼 때, 전도의 황금 어장에 내가 들어서 있구나 하는 생각을 갖는 것이 바로 주님의 생각이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4:34-35에 이것을 보고 밭이 희어져 있다, 즉 거두어 들릴 곡식이 잘 익어 많이 널려 있다고 되어있으며, 마태복음에는 추수할 것이 많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추수할 것은 온 세상에 널려 있음을 보게 되며, 주님은 일군이 적음을 보신 것입니다. 왜? 일군이 적을까요? 전도 같은 것은 전문가만이 하는 것으로 알고 사양하거나, 하나님의 부르심을 전연 느끼지 못하거나, 혹 불리움을 받았다해도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기보다는 자기 집 지으려고 자기 터전이나 닦고 자기 호주머니 채우는 일에 열중하고, 인기 얻는 일에 치중하며, 진리를 굽게 하니 결과적으로 일군이 심히 적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루터와 같이 목을 내놓고 진리를 고수하는 일군이 적단 말입니다. 주님께서는 일할 일군을 보내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도록 권하시면서 본문을 마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본문을 통해 무슨 교훈을 받게 되며 우리 생활에 어떻게 적용해야 하겠습니까?

 

첫째, 희어져 있는 밭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무슨 직업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전도에 대한 사명감을 갖고, 전도 대상자들이 널리 널려 있음을 깨달은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돈벌이 할 수 있는 어장을 볼 수 있는 눈도 가져야 하겠지만, 구제 받아야할 많은 영혼들이 추수꾼을 만나고자 기다리는 희어져있는 밭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둘째, 그들에 대한 동정심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불신자들은 물론 죽은 후에 당할 엄청난 고통이 있지만, 현 세상에서도 받고있는 큰 고통이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의 죄 때문에, 또 욕심 때문에, 이웃 때문에, 사업의 실패 때문에, 아니 자기가 찾고 있는 인생의 회의 무상, 허전함 그 공허감 때문에, 불신자들이 겪는 징벌은 현세에서도 엄청나게 큰 것을 알아야 합니다.

체면 때문에 예수 안 믿는다고 큰 소리쳐도 속으로는 누가 끌고 가 주기를 바라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히 보는, 그들은 사랑하는 동정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예수를 알므로, 비록 가난하고, 몸이 아파도, 사업에 실패했어도, 불행을 당했어도, 하나님께 주시는 위로 또 소망 때문에 내 어려운 중에도 풍성한 삶을 살아나가는 평강을 그들도 맛볼 수 있어야 한다는 사랑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 내 스스로 추수할 일군으로 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남녀노소, 무식한 자, 유식한 자, 전문가, 비전문가, 이런 직업, 저런 직업 상관없이 성도로 아들로 세상에서 부르시고 낫을 듣고 추수할 밭에 나갈 일군으로 부르셨습니다. 호명하셨습니다. 한 분 한 분 출석 부르듯 다 부르셨습니다. “예”하고 일어서 나가, 낫을 손에 들고 추수할 일만 남았습니다. 비가 와 버리면 아니, 주님 재림한 후에는 익은 곡식, 희어진 밭이 끝장입니다. 비오기 전 주님 오시기 전에 낫을 대고, 익은 곡식을 거두어 드려야 합니다. 지금이 emergency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내신 추수꾼, 하늘나라의 대사 메신저입니다. 내 세상 신분은 무엇이든 하나님이 맡기신 위대한 사명자들입니다. 자부심을 갖고 전도하며, 가르치며, 병고침을 통해 널려있는 많은 곡식을 거두어 하나님께 바치시는 귀한 성도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